“비가 눈물처럼 온다”…‘채 상병 1주기 분향소’ 찾는 시민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서울에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17일 고준철씨(63)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지난해 여름을 떠올렸다. 이날처럼 집중호우가 휩쓸고 지나간 1년 전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해병대 채모 상병(당시 20세)은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구명조끼도 없이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곧 1주기 아닌가’ 싶었다던 고씨는 직장 근처인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차려진 ‘고 채○○ 해병 순직 1주기 추모 시민분향소’를 발견하고 가던 걸음을 멈췄다.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한 그는 “어떻게 지휘했길래 이런 죽음이 일어났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채 상병의 순직 1주기인 오는 19일까지 청계광장에서 시민분향소를 운영한다. 굵은 빗줄기에도 분향소가 차려진 첫날 이곳을 찾은 시민들과 해병대 예비역들은 군복 차림의 영정 사진 앞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길을 가다 멀리서 경례하는 이도 있었다.
외동아들을 둔 김모씨(49)는 인천에서 분향소를 찾아왔다. 그의 아들은 채 상병과 동갑으로 올해 초 해병대에 입대했다. 말리고 싶었지만 ‘꼭 해병대에 가고 싶다’는 아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해병대의 안 좋은 문화가 사고 이후 많이 없어진 것 같더라”고 전했다. 김씨는 “나라를 위하다 복무하다 사고를 당했는데, 지금까지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일반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란 생각에 분향소에 와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2004년에 제대한 해병대 예비역 홍성우씨(41)는 현장에서 묵묵히 플래카드를 고쳐매며 분향소를 살폈다. 그는 “인권이 나아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렇지도 않았더라”고 했다.
홍씨는 2003년 가을 기록적인 태풍 ‘매미’가 지나간 뒤 대민지원에 투입됐었다고 한다. 그는 “어촌 마을 등에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 일을 했었는데, 20년 전에도 위험작업에 투입되진 않았다”며 “수영 훈련을 해도 실력이 될 때까지 구명조끼를 입었지, 무모하게 작업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해병대 예비역이자 베트남 참전용사 이근석씨(70대)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영정 앞에 헌화하는데 가슴이 미어졌다”며 “저 젊은 애가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는데, 1년 되도록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 했다. 그는 앞으로 3일 내내 분향소를 지킬 생각이라고 했다.
분향소가 차려지는 것을 몰랐던 시민들은 이따금 가던 길을 멈췄다. 임모씨(62)는 “젊은 나이에 창창한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감히 헤아려지지 않는다”며 “배우자와 같이 와서 헌화해야겠다”고 했다. 그는 “정치 이슈로만 떠오르는 것 같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시민분향소는 오는 19일까지 3일간(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앞서 광화문 광장에 분향소를 차릴 계획이었으나 여의치 않자 서울시와의 협의를 통해 청계광장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서울시는 공익적 목적의 이유로 이용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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