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잠이 안 와"…반지하 침수 '2년전 악몽'이 생생[르포]
"우리 집 아래 반지하 집도 상습적으로 침수돼요. 여기 봐, 호스 빼놨잖아."
17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70대 여성 A씨는 대문 밖으로 나와 있는 주황색 천막 호스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A씨가 거주하는 건물 반지하에는 2가구가 살고 있다. 한 가구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거주 중이다. A씨는 "대비한다고 해도 언제 사고가 날지 몰라 늘 불안하다"며 "특히 할머니 한 분이 반지하에 거주하셔서 걱정된다"고 밝혔다.
전날 밤부터 서울에 시간당 최대 84㎜의 집중호우가 내린 가운데 반지하가 모인 서울 동작구와 관악구 주민들은 적잖은 불안감을 나타냈다. 2년 전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다. 2022년 중부지역 집중 호우로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각각 7049명, 654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김모씨(66)는 "아들 가족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인근 반지하에서 거주 중인데 비가 올 때마다 걱정돼 손주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는다"며 "2년 전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반지하 가구에 피해가 반복되는데 아예 반지하 구조를 없애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2년 전 집중 호우 이후 반지하 가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도로에 빗물이 넘쳐도 창문을 통해 반지하 가구 안으로 물이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 장치다. 물막이판 위에는 '수해예방용 물막이판'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사고가 난 주택 인근 건물에서 상가를 운영한다는 80대 이모씨는 "물막이판 설치 이후로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물양이 줄었다"고 말했다.
동작구 사당1동 주민들도 걱정이 앞선다. 밤사이 큰 비가 내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주택가 곳곳에 현관문을 물막이판으로 막아 놓은 집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김모씨(82)는 "큰 비가 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잠이 안 온다"며 "2년 전 침수 이후로 물막이판을 보강하고 역류 방지 장치를 설치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김씨 빌라에는 반지하 2세대가 있다. 이날도 김씨는 물막이판과 빌라 주변 하수구를 점검했다.
오후 들어 점차 바람이 강해지자 김씨의 걱정도 커졌다. 그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자신의 빌라 앞에서 연신 담배를 피웠다.
사당1동 주민 박모씨(83)는 "우리 집엔 반지하 4세대가 세 들어 살고 있다"며 "한번 침수되면 정화조에서 역류한 물이 섞이기 때문에 이불을 빨아도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침수가 되면 가재도구 다 버려야 한다"며 "비가 온다고 하면 걱정이다"고 했다.
박씨와 김씨는 반지하 주택이 몰려 있는 사당1동 주택가 사이 도로를 걸으며 막힌 하수구는 없는지 점검했다.
사당1동에서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주민 중에 2년 전 침수 피해를 보고도 이사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도 많다"며 "우리 사무실도 2년 전에 침수가 됐지만 올해는 그래도 걱정이 덜 한 편이다"라고 했다. 이씨는 "역류방지 장치가 설치돼 있고 하수도 배관도 늘렸다"며 "날씨가 신경 쓰이긴 해도 2년 전만큼은 아니다"고 했다.
물막이판을 설치하지 않은 주민도 있다. 이곳에서 에어컨 수리점을 운영하는 장모씨는 가게 입구가 좁아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장씨 수리점도 2년 전 침수 피해를 입었다.
장씨는 "침수가 시작되면 물막이판으로 막을 겨를도 없이 가게 안으로 밀려 물이 밀려 들어온다"며 "소용없을 것 같다. 천재지변은 내가 뭘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18일 오전까지 중부 내륙을 중심으로 대류성 강수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정체전선이 느리게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수도권과 함께 충청 북부 지역에도 집중호우가 내릴 전망이다. 17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수도권 지역 예상 누적 강수량은 80~150㎜다. 일부 지역은 200㎜ 이상 내릴 것으로 예측된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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