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성지’에 입성한 클래식…국립심포니가 콩치노 콩크리트로 간 사연

뮤지엄 콘서트부터 로비 콘서트까지
공연장 벗어나니 새로운 관객 유입
진입장벽 낮추고 ‘올드’ 이미지 바꿔

파주의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공연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아득한 북한강, 벽면을 가득 메운 대형 스피커, 그 앞으로 자리 잡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현악 4중주단 김정(32), 김아현(29), 윤지현(28), 최정우(32). MZ(밀레니얼+Z) 실내악단이 그리그의 현악 4중주 1번을 연주하자 130명의 관객 사이로 풍성하고 밀도 높은 소리들이 내려앉았다. 경기 파주의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프 어라운드 클래식’이다.

이날 공연을 찾은 홍유빈(24) 씨는 “평소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지도 않았고, 클래식 공연장을 찾았던 적도 없는데 이곳에 와서 라이브로 들으니 클래식의 색다른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며 “록 음악을 좋아했지만, 오늘을 계기로 클래식 공연장에 가서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이 각 잡고 음악을 듣는 공연장에서 떠났다. 덕분에 만나는 관객도 유연해졌다.

지난 주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프 어라운드 클래식’이 열린 콩치노 콩크리트는 일명 ‘노을 맛집’으로 불리는 힙스터 성지다. 음악 감상도 ‘대충’ 하는 법이 없는, 까다롭고 깐깐한 귀를 가진 MZ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K-팝 그룹 NCT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파주의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공연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클래식 공연과 음악 감상실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일찌감치 전석 매진을 기록한 이날 공연은 예매 관객의 60%가 20~30대였다.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에서 보기 드문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패션 스트리트에서 볼 법한 ‘힙’한 관객들이 자리를 채운 것. 평균 나이 30.2세의 실내악단 단원들 역시 콩치노 콩크리트를 찾는 고객들과 비슷한 연령대라 공간 안으로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그야말로 ‘기획의 승리’라 할만 하다.

국립심포니가 이같은 공연을 기획한 것은 바로 ‘관객의 확장’을 위해서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가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연령은 24세에 정점을 찍고, 30대 이후엔 신곡을 찾아드는 횟수가 줄어 음악 취향은 31세가 되면 정체되기 시작한다는 분석을 낸 적이 있다”며 “클래식은 진입 장벽이 있는 장르인 만큼 관객 확장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는 관객 확장의 해답을 ‘공간의 변화’에서 찾았다. 특히 ‘콩치노 콩크리트’였던 것은 MZ세대와의 접점 확대를 위해서다. ‘예술 소비 방식이 다채로워진 새로운 세대에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즐거운 첫 경험을 준다면 그들을 클래식 팬덤으로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게 국립심포니 측 복안이다.

파주의 음악 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공연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전략은 통했다. 콩치노 콩크리트가 주는 ‘공간의 힘’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이미지 전환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이날 공연을 찾은 이선아(24) 씨는 “클래식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는데 어플리케이션 광고를 보고 한 번 와보게 됐다”며 “콩치노 콩크리트가 워낙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고 새로운 장르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립심포니를 잘 모르는 데다 다소 올드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오늘 공연을 통해 사라졌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는 이번 공연의 홍보 창구로 MZ세대들이 즐겨 보는 ‘데이 트립’ 어플을 활용했다.

국립심포니 뿐 아니라 다른 국내의 다른 악단들도 공연장을 벗어나 관객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에선 2017년부터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 1층 로비에서 ‘직장인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점심시간을 활용, 직장인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교보문고에서 ‘봄날의 음악회’도 열고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공예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등에서 ‘뮤지엄 콘서트’를 열고, 지난해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으로 파크콘서트도 개최했다.

서울시향 뮤지엄 콘서트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공연장을 벗어난 연주회는 대중적 선곡과 저렴한 티켓 가격이 강점이다. 심지어 일부 공연은 무료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공연장 밖 연주회는 일상 생활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콘셉트”라며 “공연 이후로 클래식에 관심 없었던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티켓값이 10만원대 이상인 클래식 공연은 다소 진입 장벽이 있어 야외 연주회 등에선 저렴한 가격대로 음악 향유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향의 야외 공연이나 뮤지엄 콘서트는 공연장에서 오랜 시간 버티기 어려운 어린 자녀와 함께 오는 30~40대 부모,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클래식 음악은 ‘엄숙주의’를 벗고 진입장벽을 낮춘다. 음악계에서도 클래식 음악 장르의 관객 확장을 위해 이러한 기획을 긍정적으로 본다. 한 클래식계 관계자는 “대체로 클래식 기획자들은 콘텐츠가 좋으면 관객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며 “세대와 시대가 달라지며 공간이 주는 매력이 콘텐츠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콘서트 [KBS교향악단 제공]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프 어라운드 클래식’의 진행을 맡은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클래식 음악은 심리적, 물리적 문턱이 모두 높은 예술이다. 색다르고 열린 공간에서 호흡하는 클래식은 이율배반적 쾌감 두 가지를 동시에 선사할 수 있다”며 “높은 예술적 경지와 연주자들의 카리스마를 같은 눈높이, 낮은 문턱을 통해 곧바로 느낄 때의 충격적 쾌감과 음악이 가진 보편적 설득력을 편견이나 공포감 없이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