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미숙과 기쁜 성숙 [세상읽기]
조건준 | 아무나유니온 대표
크려고 그래. 어린 시절에 원인 모를 통증을 느끼다가 이 말에 안심했다. 성장통은 저절로 낫는다. 그러나 성장이 끝난 뒤 필요한 성숙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성장기가 지났는데 계속 성장에 집착하면 어떻게 될까. 퇴행한다.
고도성장의 ‘장기 20세기’를 지난 세계는 저성장으로 돌아섰는데 성장 중독은 남았다. 투자를 늘려 생산을 증대하던 성장기 관성으로 돈 줄 테니 애 낳으라는 이 미숙을 어쩌랴. 양극화는 더하기만 하고 나누지 못한 미숙의 사회적 증상이다.
“사과가 특산품이야.” 강원도 양구에 사는 친구 얘기다. 이곳에서 군 복무할 때 사과 농사는 없었다. “물회에 오징어가 없네.” 동해안 식당에 가니 오징어가 잘 안 잡힌단다. 성장 중독에 빠진 인류가 뿜어댄 탄소 때문에 육지 식물도 바다 동물도 서식지를 바꾼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사라지고 인위자연(人爲自然) 가득하다. 미숙의 생태적 증상이다.
“안전한 관계가 필요해요.” 프리랜서의 얘기다. 자신들의 사회성은 생계형 사교성이란다. 돈을 위한 미소는 있고 사람에 대한 정은 없다. 경쟁과 갑질이 도사린 불안전한 관계다. 생태계도 폭염과 한파, 가뭄과 홍수로 몸부림치며 문명과의 안전한 관계를 원한다.
인간은 정(情)으로 시작한다. 부모의 애정으로 태어나 돈을 위해 직업을 갖고 막강한 힘인 국가권력을 둘러싼 정치에 참여한다. 생애는 이렇게 정·돈·힘의 관계로 이동한다. 하지만 정·돈·힘은 조화롭지 않다. 성장 중독으로 돈을 추앙하고, 민주화로 권력을 맛본 좌우에서 힘을 추앙했다. 추앙 잔치가 벌어질 동안 사회는 차갑고 지구는 뜨거운 위험이 되었다.
하지만 ‘그놈의 정’은 여전히 풍부하다. 마음에서 솟아 마르지 않는다. 강하다. 탐욕으로 나누지 않던 재산과 권력을 정으로 낳은 자식에게만 물려줄 정도다. 애정은 케이(K)영화, 케이드라마, 케이팝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공자의 인(仁),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이 모두 정이다. 인공지능(AI)에게 없고 인간에게 있다. 돈은 부자에게, 힘은 권력자에게 몰려 있지만 정은 모든 시민에게 있다.
정이 흘러야 속을 털어놓을 안전한 관계가 된다. 행성에 정이 흐를 때 지구는 수탈 대상이 아닌 생명의 터전이 된다. 그러나 돈이 많거나 힘은 세지만 미숙한 자들의 횡포가 정떨어지게 한다. 성숙은 돈과 힘에 굴하지 않는 다정함이다. 그래서 희망은 돈에 밀리거나 힘에 눌리지 않고 균형 잡힌 적정 사회다.
“적당한 것이 제일 어려워요.” 그런가. 지구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살기 적당한 ‘골딜록스 존’이다. 인간은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어서 적정 체온을 유지한다. 힘이 나면 움직이고 힘 빠지면 쉰다. 생명은 적정성이다. 적정한 것이 아름답다.
이 상태라면 한국은 양극화와 기후 악당을 벗어나기 어렵다. 인류는 재생에너지로 전환에 노력하지만, 이것은 물리적이다. 심리적 에너지 전환 없이 물리적 에너지 전환 없다. 동료 시민의 다정함 없이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고 자연에 대한 애정 없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없다.
“그럼, 정을 막 주면 돼요?” 정은 연인을 만나 애정이 되고 친구를 만나 우정이 된다. 정은 돈과 권력에 뒤틀리지만, 시민권과 사회권으로 확장됐다. 정이 사회로 퍼지면 시민혁명의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며 동학혁명의 모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정은 다정한 공동체의 필수 에너지다.
정의 사회적 버전이 권리다. 하지만 보편성을 잃으면 특권이 된다. 소수만 떵떵거리게 한 소유권은 권리가 아닌 특권으로 타락했다. 권력을 추앙하는 시민단체는 의미 없다. 돈을 추앙하는 노동은 자본의 욕망을 공유하는 체제의 일부다. 과격하든 온건하든 그런 노조가 21세기 어용이다. 그곳에 연대의 정은 없다. 널린 이익결사체인 기업과 팬덤이 설치는 권력결사체인 정당과 다른 권리결사체가 대폭 늘어나 세져야 한다.
성찰이 성숙을 낳는다. 공격받는 지구 행성이 성찰을 원한다. 생태계를 공격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외계인을 향한 비판과 분노를 터트릴 수 없다. 절박한 것은 인류의 성찰이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개혁과 혁명은 속도와 강도만 다를 뿐 누가 부를 소유할 것인지, 누가 권력을 가질 것인지를 둘러싼 것이었다, 관계의 에너지에 주목하지 않았다. 절실한 것은 풍성한 정이 흐르게 할 관계의 재편이다. 미숙의 슬픔을 보내고 성숙의 기쁨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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