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자기결정권과 돌봄통합법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당사자도, 보호자도 모두 지친 후에야 결정이 난다. 요양원 입소 말이다. 부모돌봄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요양원 입소를 두고 ‘원만한 합의’를 이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쇠해진 부모님은 살던 곳에서 쭉 살고 싶어 한다. 자식도 그 마음 모르지 않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을 수 있는 돌봄서비스는 충분치 않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시간을 내서 곁을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돌봄의 공백 속에서 사고라도 나면 요양원 이야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부모님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며 절대 안 간다고 버티고, 자식들은 ‘좋은 요양원’을 찾아서 보여주며 설득에 설득을 더한다. 그러다 부모님이 스스로 버틸 수 없을 만큼 노쇠해져서 자식들에게 폐만 끼친다고 느낄 때, 요양원 입소는 자식들 손에 결정된다.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냈다는 죄책감은 덤이다.
이런 대화는 대개 옛날 분들이 ‘편견’을 깨야 한다고, 요양원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밥과 약을 잘 챙겨 먹고 요양보호사와 입소자 간 사이도 좋고 사생활도 어느 정도 존중되는 ‘좋은 요양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곳이 얼마나 될까 싶다.
무엇보다 당사자의 말에 담긴 일말의 진실이 묻혀버리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요양원에 대한 인식을 단지 편견으로만 치부하기 이전에, 정말 요양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요양원 가서 재활로 이전보다 조금 더 회복돼서 나오는 경우는 없을까? 구태여 더 건강해지지 않더라도 당사자의 결정대로 집과 요양원을 오간 경우는 없을까?
아직까지 나는 이런 경우를 눈앞에서 본 적도, 풍문으로 들어본 적도 없다. 내가 노년이 돼서 돌봄을 받을 때, 내 주변에도 이런 삶의 모델이 없다면 나도 요양원을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집에서 요양원으로, 요양원에서 집으로, 자유롭게 순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추운 겨울날, 낙상 위험도 커지고 외출도 어렵다면 한 계절만 요양원에서 생활했다가 따뜻한 봄에 다시 집에서 생활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요양원이 내가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닐 수 있다.
내가 요양원에 들어가도 나의 결정으로 나올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집이냐, 요양원이냐 하는 이분법을 넘어 어느 순간에도 나의 결정이 존중받는다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 요양원 입소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부모-자식 간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않은 건 자식 이전에 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올해 3월26일‘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돌봄통합지원법)이 제정됐다. 한 사람이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때 ‘보건의료, 건강권리, 장기요양, 일상생활돌봄, 주거,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분야의 서비스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돌봄의 기본법이다.
돌봄통합지원법은 2026년 3월27일부터 시행된다. 그 전까지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채워 넣어야 할 게 많다. 수백가지의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통합할지, 다양한 돌봄을 제공하는 인력은 어떻게 양성할지, 우리 삶 가장 가까이서 돌봄 필요와 위험을 확인하는 지자체에 얼마만큼 권한과 책임을 줄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다양한 돌봄 영역을 통합하는 만큼 의료, 요양, 복지, 주거 등 이해관계자들도 많고 복잡하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이해관계자 간 조율 과정에서 돌봄을 받는 시민의 자율성은 후순위로 밀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돌봄이 필요한 시민의 자율성을 중심에 두고 통합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내가 돌봄을 받을 때 자율성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우리는 돌봄통합지원법 앞에 각자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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