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마추어 소믈리에 … 와인의 맛은 매년 바뀌니까"
반도체기업가 집안서
와인 세계에 푹 빠져
1988년 본격 창업 뒤
아시아 최대로 키워
2015년 아사히에 매각
고문으로 왕성한 활동
"오랜 역사 지녔지만
여전히 미스테리한 게
와인의 진정한 매력"
"전 여전히 스스로 와인 아마추어라고 느껴요. 매년 자연과 환경에 따라 풍미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와인 앞에서는 그 누구나 아마추어일 뿐이죠."
아시아 최대 와인 수입사 에노테카를 창업한 히로세 야스히사 고문(75)이 매일경제와 만나 "오랜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여전히 미스터리하다는 것이 와인의 매력"이라며 이처럼 강조했다.
히로세 고문은 1988년 와인 수입사 에노테카를 창업한 뒤 30여 년간 에노테카를 아시아 최고의 와인 수입사로 키워냈다. 2008년 홍콩에 진출한 이래 싱가포르, 중국, 대만, 태국 등 아시아 주요 시장 각지로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국내에도 매장을 15개 이상 내는 등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에는 아사히에 에노테카를 매각한 뒤 에노테카 고문 역할을 맡으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주요 공급사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운 공급자를 찾고 있다"며 "에노테카의 와인 포트폴리오를 키워나가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국내에서도 와인이 대중적으로 폭넓은 애호가층을 구축하고 있지만 아시아 시장에서 와인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와인이 대중화되기까지 히로세 고문의 에노테카가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대부분이 '와인 불모지'였던 시절, 어린 히로세는 반도체 사업을 하던 부친을 통해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와인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해외 거래처 담당자들과 만나던 아버지와 함께 와인 종주국들의 와인숍과 레스토랑을 찾으며 자신만의 취향을 발전시켰다. 그는 "집안은 반도체 사업을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와인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부친이 회사를 매각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히로세 고문은 다른 주종이 아닌 와인 한 가지에 끊임없이 몰두하는 것을 에노테카 경쟁력의 근원으로 꼽았다. 그는 "에노테카를 찾은 고객들이 이곳을 '와인 월드'로 느낄 수 있도록 매장 디자인 등도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오직 와인의 풍미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사업 철학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와인에 대한 열정과 철학에 흔들림이 없는 그는 2015년 돌연 에노테카를 아사히에 매각했다. 거대 기업 아사히의 자금력과 물류 시스템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차원에서였다.
에노테카를 승계하지 않기로 결단한 것도 아사히 매각의 배경이 됐다. 히로세 고문의 유일한 아들이 승계를 마다했기 때문이다. 와인보다 음악 산업이 더 재밌다는 간단한 이유에서다. 부친의 반도체 기업을 이어받지 않고 자신만의 일가를 이룬 히로세 고문 스스로의 모습이 겹치는 대목이다. 그는 "아들에게 대학 졸업 후 에노테카를 이어받길 여러 차례 진지하게 권했지만 본인이 마다했다"며 "압력을 받아 어떤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붐'이 일었던 한국 와인 업계에 대해서도 그는 낙관적 전망을 유지했다. 엔데믹과 함게 와인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는 "한번 와인을 맛본 이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내가 즐기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즐길 것'이라는 간단한 철칙이자 노하우에서 나온 통찰이다.
히로세 고문은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프랑스 주요 산지를 매년 수차례 찾는다. 보르도는 해마다 2~3번, 부르고뉴도 매년 한 번씩은 찾는 식이다. 최근에는 와인 가격이 급등한 보르도 대신 브루고뉴와 이탈리아 토스카나(브루넬로)·피에몬테(네비올로) 와인을 자주 찾는다.
와인 초심자들에게 그는 "와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다른 사람들 말은 잊고 자신의 입맛을 믿으라"고 잘라 조언했다. 그는 "인간은 진실을 맛보지 않고는 알아볼 수 없듯,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그는 에노테카가 '소비자들과 함께 나이 드는 브랜드'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그 감동을 주변 사람과 나누고 싶어지듯, 좋은 와인을 알게 되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알리고 전해주는 기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히로세 고문은 "그것이 에노테카의 초심이고, 해왔던 일을 계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홍주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8년간 30조 희망고문, 누가 책임질거냐”…‘K팝 아레나’ 무산에 고양시 뿔났다 - 매일경제
- ‘쯔양 협박 의혹’ 구제역, 또다른 협박사건 ‘유죄’…재판중 사건만 8건 - 매일경제
- ‘임신 36주 낙태’ 영상 논란…서울청 형사기동대 배당 “엄정수사” - 매일경제
- [단독] 은행 내부자가 꿀꺽한 돈 올해만 662억…대부분 날리고 고작 2.5% 회수 - 매일경제
- 영화로도 나온 ‘백인 흙수저’ 상징…트럼프 당선땐 세번째 젊은 부통령 된다 - 매일경제
- “2년간 아내 포함 여성 42명 토막 살해”…연쇄살인범 자백에 케냐 발칵 - 매일경제
- [단독] “나이 40 넘어 누가 판사 하겠나”...경력 20년 베테랑 판사 사라진다 - 매일경제
-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트럼프에 2500억 기부금”…일론 머스크 전격 선언 - 매일경제
- “나라 누가 지키나”…내년부터 ‘군병력 50만’ 유지 어렵다 - 매일경제
- 대한축구협회 지켜만 보지 않는다…문체부 “감독 선임 과정 조사, 한계 다다랐다”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