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암 수술해도 '쌍꺼풀'보다 수익 낮아" 공공병원 외과 의사의 한탄
"위, 췌장, 비장, 신장, 대장을 모두 떼는 암 수술을 온종일 해도 쌍꺼풀 수술(약 200만원)보다 수가가 낮습니다. 한쪽만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일까 싶네요"(신동규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
17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개최한 제4회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공공병원 필수의료 외과 의사의 삶'을 주제로 발표한 신동규 서울적십자병원 외과 과장은 이렇게 말하며 씁쓸히 웃었다. 신 과장은 전공의·펠로를 마친 후 서울의료원(전 시립 강남병원)에서 적십자병원까지 20년간 공공의료 분야 외과 의사로 일해 온 필수과 의사다. 지금까지 유방, 대장, 담낭, 탈장, 맹장염 등 4700여 건의 수술을 집도했다. 공공병원은 각각의 장기, 즉 세부 분과별로 의사를 채용하기 어려워서 한 명의 의사가 여러 수술을 도맡는다. 그야말로 '일당백' 외과 의사라 할만하다.
신 과장은 지금도 병원 전체에서 상위 5%에 해당할 만큼 업무량이 많다. 그러나 급여는 하위 5%에 해당할 만큼 작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 수익이 제로(0)이거나 오히려 적자다 보니 급여를 많이 주는 건 병원 경영 측면에서 맞지 않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일반병원 의사와 비교해 수입 격차도 큰 것으로 알려진다. 신 과장은 "서울의료원에서 10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대학병원에서 펠로 몇 년 한 후배 퇴직금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 의사의 권유로 공공병원 의사로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성적순으로 상위 10%에 해당하는 의사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내·외·산·소)에 '선발'됐다. 선배에서 후배로 '도제식 교육'이 이뤄졌고 병원 선택에서도 선배의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공공병원을 찾는 환자는 사정이 딱한 경우가 많았다. 월세 30만원을 내지 못해 쫓겨난 위암 환자를 위해 그는 두 달 치 월세를 손에 쥐여줬다. 고향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는 스리랑카인 환자는 그로부터 비행깃값 60만원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이런 신 과장의 행동이 알려지면서 외부로부터 후원금이 쇄도하기도 했다. 그는 이 돈을 고스란히 환자에게 건넸다.
대학병원과 비교해 인력과 장비가 충분치 않지만, 진료 역량은 공공병원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가 '쌍꺼풀 수술보다 수가가 낮다'고 한 수술은 위→ 췌장→ 비장→ 부신→ 신장→결장을 순차적으로 떼는 '좌상복부내장적출술'(LUAE)이다. 2014년 위암이 주변 장기로 전이돼 대학병원에서 6~8개월의 기대여명을 판정받은 45세 여성 환자에게 시행했다.
거의 온종일 수술에 매달렸지만 동일 절제로 이뤄지는 수술은 최초 장기 적출에는 100% 수가를 받아도 이후 75%, 50% 등 순차적으로 줄어든다. 애초 외과 수술은 수가가 낮은데 하면 할수록 이보다 더 적은 돈을 받으니 적자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신 과장은 "4살 된 딸이 학교 갈 때까지만 살고 싶다"는 환자의 희망을 이뤄주려 수술을 결정했다. 환자는 수술 후 24.5개월을 살다 세상을 떠났지만, 남편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필수의료인 외과 의사로서 신 과장은 "수가를 올려 급여를 높일 거라면 필수과 의사를 안 했을 것"이라면서도 "수가를 조정하는 게 아랫돌 빼서 윗돌을 막는 것이라 하지만, 공공병원이든 아니든 수가 문제가 해결되면 필수과 의사를 더 뽑고 일을 나눌 수 있다. 지금보다 좀 더 환자에게 신경을 쓰고 '럭셔리'하지는 않아도 인간답게 일을 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수가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의대 정원 증원 후 시나리오를 언급하면서는 "현재 의대 정원 3000여 명 중 30%가량이 피부·미용 등으로 빨려 들어간다. 매년 이 정도가 빠져도 의료 시스템이 돌아가는 건 의사가 부족한테 아니라 '필수과 의사'가 부족한 것"이라며 "단순 증원만으로 필수과 붕괴를 막지 못하고 의사 수 증가로 의료비가 상승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20%를 차지하는 사회적 약자와 5%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의 건강권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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