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면 어쩌려고”···피치컴 첫인상은 극과 극, 상위 팀들은 전부 ‘패스’했다[스경x이슈]
‘피치컴’이 KBO리그에 등장했다. 내년 피치클록 정식 시행을 추진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메이저리그에서 사용되는 피치컴을 도입해 10개 구단에 배포하고 지난 16일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당장 사용하겠다는 팀은 몇 없다. 대부분 “연습이 필요해 바로 쓰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즉각 사용하지 않는 팀은 중·상위권, 현재 치열한 순위싸움 중인 팀들에 몰려 있다.
피치컴은 투수와 포수의 사인 교환을 돕는 장치다. 사인을 입력하는 송신기와 그 사인을 음성으로 듣는 수신기로 세트 구성돼 있다. 송신기에는 9개의 버튼이 있다. 사전에 설정된 구종과 투구 위치 버튼을 순서대로 입력하면 수신기를 통해 음성으로 전달된다.
송신기는 투수나 포수만 착용하고, 수신기는 투·포수와 함께 야수 3명까지 착용할 수 있다. 포수는 상대 타자가 음성을 듣지 못하게 이어폰으로, 투수는 모자에 부착된 장비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송신기 사용이 간단치 않다. 버튼이 9개나 있는데 피치클록 제한에 따르면 18초, 주자 있을 때는 23초 안에 사인을 주고받은 뒤 투구를 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해 바로 수신호로 사인을 내는 것과 달리 일종의 리모콘 조작을 거쳐야 하는 터라 버튼별 위치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하다. 실수로 잘못 눌러 사인 미스가 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매 경기 1승과 1패가 중요한 후반기에 실전에서 바로 사용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 피치컴 사용은 의무 사항이 아니다.
당장 사용하겠다는 구단은 KT와 한화밖에 없다. KT는 지난 16일 고척 키움전에서 포수 장성우가 송신기를, 선발 웨스 벤자민이 수신기를 차고 경기했다. 16일 경기가 비로 취소된 한화 역시 17일 창원 NC전부터 바로 피치컴을 사용한다. 선발 투수는 제이미 바리아다. 이미 미국에서 피치컴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투수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머지 8개 구단은 일단 피치컴을 받아만 둔 상태다. 그 중 NC, SSG는 연습해본 뒤 쓰겠다는 유연한 입장이다.
강인권 NC 감독은 “(사인 훔치기와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가 없어지면 좋겠다. 시력이 안 좋은 투수도 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불펜피칭 단계에서 준비한 뒤 익숙해진다면 그 뒤 바로 사용하겠다”고 했다. SSG 역시 연습을 거친 뒤 실전에서 써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즌 중 경기에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구단도 여럿이다. 특히 현재 상위권에 집중돼 있다.
KIA 이범호 감독은 “장비를 보니까 연습을 거치지 않으면 도저히 경기에서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버튼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아 숙지하고 감각적으로 눌러야 되고, 사인을 듣고 직접 내고 다 해야 되니까, 우리는 최대한 연습해서 완벽히 숙지될 때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시즌 중엔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박진만 감독 역시 “수동적인 방식에 익숙한데 갑자기 바로 쓰면 사인 미스가 나올 수 있다.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경기 중 연습은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불펜피칭할 때나 해보고 시즌 뒤 마무리캠프 때부터 본격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LG 염경엽 감독은 사용하게 될 경우를 전제로 해 “투수별로 다르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나 실제 경기 중 사용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 LG는 일단 훈련 때만 연습을 할 계획이며 의무 사항이 아니므로 시즌 중 경기에 활용할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밝혔다.
두산 이승엽 감독도 “한 경기, 공 하나에 승부가 결정되는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당장 쓰기는 어렵다. 파트별로 논의해봐야겠지만 시즌 끝나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16일 현재 선두 KIA 뒤를 삼성이 4.5경기 차로 쫓고 그 뒤에 LG, 두산이 각각 1경기, 0.5경기 차로 바짝 붙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2022년부터 사용된 피치컴은 원래 사인 훔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용도지만, KBO리그에서는 올해 피치클록을 도입하면서 필요성이 대두됐다. 경기 시간을 줄이고자 피치클록을 시행하는데 메이저리그보다 작전도 많은 편인 KBO리그에서 수신호로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이상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피치클록 효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당초 피치컴 없이 피치클록 시행을 준비했던 KBO는 뒤늦게 전파인증 절차를 거치고 미국에서 기기를 대량 구매해 지난 15일 전 구단에 배포했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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