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이 전부 잠겨”…급히 빼낸 살림살이 반지하 계단 가득

이지혜 기자 2024. 7. 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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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야 난리. 이것 좀 빨리 빼봐."

17일 오전 서울 강동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는 빗물에 잠긴 살림살이를 '구출'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2022년 폭우로 반지하에서 세 모녀가 숨졌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에 사는 진아무개(57)씨는 비가 올 때마다 언제 물이 넘쳐 들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장마철을 보낸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반지하 수해에 대비해 설치한 '물막이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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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시간당 30∼60㎜ 매우 강한 비
반지하·저층부 주민들 해마다 수해 걱정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강동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빼낸 세간들. 조영은 교육연수생

“난리야 난리. 이것 좀 빨리 빼봐.”

17일 오전 서울 강동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는 빗물에 잠긴 살림살이를 ‘구출’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지던 비는 잠시 멎었지만, 집주인 박말임(78)씨는 비와 땀으로 젖은 채 세입자들과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판과 옷가지, 운동화, 체중계 등을 꺼내기 바빴다. “아침에 잠깐 나갔다가 와보니 물이 가득 차있는 거예요. 장판이 전부 물에 잠겼어.” 침수예보가 발령된 강동구 고덕천은 오전 한때 범람 직전까지 물이 차올라 인근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서울 전역과 인천, 경기 부천과 구리 등에 호우경보가 발효된 17일 아침부터 수도권 지역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6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리면서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반지하나 저층부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수해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2022년 폭우로 반지하에서 세 모녀가 숨졌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에 사는 진아무개(57)씨는 비가 올 때마다 언제 물이 넘쳐 들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장마철을 보낸다고 했다. “매년 비가 올 때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아세요? 그냥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다 잠길 만큼 비가 와야 정부가 정신 차리겠구나.” 이 동네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진씨는 “신림동 일대는 장마 때마다 침수 때문에 전기가 나가는데도 집주인들은 장마 대비로 뭐하나 해주는 게 없다”며 “동사무소도 양수기를 보여주기식으로만 설치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미 2년 전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를 경험한 하천 인근 주민들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문아무개(52)씨는 “2년 전 폭우 때 도림천이 넘쳐서 가게 앞 지하가 다 잠겼고 그 뒤로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며 “2년 전 트라우마로 장마철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비만 오면 손님들 발길도 끊긴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반지하 수해에 대비해 설치한 ‘물막이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일대 빌라에 사는 ㄱ씨는 “오늘도 비가 막 쏟아진다고 해서 걱정을 하긴 했다. 물막이판도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써본 적은 없다”며 “자동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무거운 걸 들어서 껴야 하는데, 주차장으로 차가 드나들 때는 또 빼놔야 해 그때마다 빼고 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수도권 시민들의 출근길도 험난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박지현(23)씨는 “오늘 아이들이 등원할 때 비에 폭삭 젖어서, ‘선생님, 다 젖어서 너무 추워요’ 하며 바들바들 떨었다”며 “저도 버스 시간표대로 버스가 오지 않아 출근할 때 무척 난감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사는 정아무개(28)씨는 “성북구 쪽으로 가양대교·강변북로를 타고 출장을 가고 있었는데, 도로에 물이 너무 많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있다”며 “중요한 출장이지만 오후에 못 돌아올 수도 있어서 출장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조기훈(63)씨는 “반대편 차선에서 물을 튀겨 앞 유리를 덮치고, 당장 10m 앞 거리도 안 보일 정도로 시야에 제한이 생겨 조마조마하며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지난해 7월 충북 청주시에서 일어난 오송 지하차도 참사, 2022년 8월 폭우로 강남역 일대가 완전히 침수된 일 등 과거 수해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윤아무개(26)씨는 “아침에 받은 재난문자만 호우경보, 전동차 지연 운행, 산사태 위험, 동부간선도로 지하차도 통제 중 등이다. 와르르 오는 문자들을 보니 작년과 재작년 수해들이 생각나 무서웠다”며 “특히 ‘지하차도 통제 중’ 문자를 받고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생각이 났다. 오늘 엄마가 제사 지내러 안산에 간다고 하시는데 그냥 안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재 도움: 조영은, 조승우 교육연수생)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조영은 교육연수생 조승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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