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백신 음모론’으로 케네디 사퇴 설득?…통화 영상 유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무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후보 사퇴를 설득하는 듯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출됐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케네디 주니어의 장남 보비 케네디 3세는 이날 엑스(옛 트위터)에 트럼프 전 대통령과 케네디 주니어의 통화 내용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격당한 다음 날인 14일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원본 영상은 현재 삭제됐지만 온라인상에 녹화본이 다수 남아있는 상태다.
영상을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피커폰 통화에서 아이들이 너무 많은 백신을 맞고 있다며 “소량만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여러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이상하다면서 “어린이가 38가지 백신을 맞으면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케네디 주니어의 후보 사퇴를 유도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신이 뭔가를 해주면 좋겠다. 당신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라며 “우리가 이길 거다. 그 사람(조 바이든 대통령)을 훨씬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케네디 주니어가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면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케네디 주니어는 백신이 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음모론적 주장을 퍼뜨리며 코로나19 등 각종 백신 접종에 반대해왔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자신을 지지한 뒤 사퇴해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두 사람이 손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처음이 아니다. 두 후보는 통화 다음날인 15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밀워키에서도 만났다. 이에 케네디 주니어가 선거 운동을 중단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한 후 사퇴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케네디 주니어 측은 “국가적 통합”을 논의했을 뿐이라며 사퇴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영상으로 확인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케네디 주니어는 “알겠다”고 작은 소리로 답한 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케네디 주니어는 암살당한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아들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로,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초반엔 트럼프 전 대통령도 그가 바이든 대통령의 표를 빼앗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지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케네디 주니어가 흡수하는 유권자층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모두에게 악재가 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기 시작한 뒤로는 입장이 달라졌다.
케네디 주니어는 영상 유출에 즉각 사과했지만 거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엑스를 통해 “영상이 공개돼 당황스럽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사과드린다”며 “선거 캠프에서 영상 제작자들과 촬영 중이었는데, 통화할 땐 (촬영을) 중단해달라고 지시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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