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덕분에 야구해요"…6년 기다린 감격 첫승, 야구인 2세인 줄 알았나요?[김민경의 비하인DOO]

김민경 기자 2024. 7. 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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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이교훈은 지난 11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프로 데뷔 6년 만에 첫 승을 챙겼다. ⓒ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이교훈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진짜 아버지는 내가 많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진짜 지금까지 내가 야구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분 아닌가 싶다. 감사하다."

두산 베어스 좌완 투수 이교훈(24)은 잘 알려지지 않은 야구인 2세다. 그의 아버지는 남양주시리틀야구단을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던 이상찬 감독이다. 이 감독은 부산상고와 동아대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 부상으로 유니폼을 벗고 공기업 직장인으로 10년을 살았다. 그래도 야구를 포기할 수 없어 경기도 남양주시에 리틀야구단을 2003년 창단해 2013년까지 감독을 지냈다. 전국대회에서 40여 차례 우승을 이끌면서 리틀야구계의 명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교훈 역시 남양주시리틀야구단에서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우면서 선수의 꿈을 키웠고, 두산 동료 내야수인 박준영도 아버지의 제자다.

박준영은 "10살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를 지도해 주신, 내 야구 인생 첫 스승이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분이다. 언제나 기본기를 강조하셨고, 야구에 열중해야 하는 점을 가르쳐 주셨다"고 이상찬 감독을 기억했다.

야구를 사랑하는 아버지 덕분에 이교훈은 선수의 꿈을 키웠다. 이교훈은 야구 명문인 서울고를 졸업하고 2019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29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선수를 꿈꿨으나 부상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아버지의 한을 아들이 조금이나마 풀어줬다.

이교훈은 상위 지명 선수였고, 두산에 귀한 좌완이라 구단 내부적으로 기대가 있었다. 프로 2년차였던 2020년 처음 1군 무대를 밟았으나 5경기, 4⅓이닝, 평균자책점 10.38에 그쳤다. 당장 1군에서 활용하기에는 여전히 원석에 가까웠다. 2021년에도 11경기에서 8⅓이닝, 평균자책점 10.80에 그치자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입대 직전에는 쇄골 인대 부상이 있어 구단 내부적으로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었다. 이교훈은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면서도 공을 놓지 않고 훈련을 했고, 휴가 기간 시속 145㎞를 웃도는 빠른 공을 던지면서 선수로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두산은 2022년 1차지명 좌완 이병헌과 함께 지난해 12월 전역한 이교훈을 왼손 불펜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교훈은 "군대 가기 전에 쇄골 쪽 인대가 조금 안 좋았다. 일반인이 봤을 때는 크게 다쳤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막 아프지도 않고 괜찮았다. 야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군대에 가야 하니까. 이참에 그냥 군대에 가서 잘 재활하고 몸을 만들면 더 좋아지겠다는 생각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군대에서 외출을 할 수 있으면 파주 근처까지는 나갈 수 있다. 파주에 있는 사회인 야구장에서 권휘(두산 투수)랑 같이 운동을 했다. (권)휘도 군인인데 걔는 스피드건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재보고 싶어서 쟀더니 145㎞ 정도가 나왔다. 군대 안에서 잘 준비하고 그러니까 아프지 않더라"고 덧붙였다.

전역하고 팀에 복귀해 착실히 몸을 만든 이교훈은 지난 5월 중순부터 조금씩 1군에서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2⅔이닝 2피안타 무4사구 4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프로 데뷔 6년 만에 감격적인 첫 승을 기록했다. 선발투수 김유성이 2이닝 1실점에 그치고 마운드를 내려간 가운데 2번째 투수로 나선 이교훈이 2⅔이닝을 41구로 잘 막은 덕분에 두산은 12-1로 크게 이길 수 있었다.

프로 무대에서 힘겹게 첫 승을 거둔 이교훈은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아버지 덕분에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을 수 있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본격적으로 스승과 제자로 야구를 배웠다. 아버지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기본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다. 타격은 팔 스로잉, 투수는 캐치볼을 매우 중요하게 가르치셨다. 캐치볼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셨고, 타격할 때는 공을 토스해 주셔서 가볍게 천천히 날아오는 공을 치면서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하게 하셨다. 아버지가 그때부터 공부를 진짜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찍어 치는 게 유행했는데, 아버지는 그때부터 소위 말하는 나이키 스윙을 하도록 가르치셨다. 지금 보면 아버지가 멀리 보셨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 두산 베어스 이교훈 ⓒ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이교훈 ⓒ 두산 베어스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의 첫 승을 감격스럽게 지켜봤다. 이교훈은 "승리한 날 바로 연락이 왔다. 내가 인터뷰할 때 부모님께 했던 말이 감독이었고,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 엄청 축하해 주셔서 더 뭉클했다"고 속마음을 표현했다.

이교훈은 그런 아버지에게 "진짜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고, 어렸을 때는 내가 몰라서 아무리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도 안 했다(웃음). 그냥 내 감각을 믿고 그냥 안 했는데, 지금 보면 아버지 말이 다 맞는 말씀인 것 같고,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 진짜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덕분이 아닌가 싶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과거 스승이었던 아버지는 오히려 이교훈에게 조언을 삼간다. 이교훈은 "내가 야구하는 것을 뿌듯해하시는 반면에 내게 조언해 주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하신다. 그래서 아버지가 뿌듯한데 티를 안 내시는 것 같다. 늘 조심스러워하시고, 그냥 멘탈 괸리를 잘해주려 하시는 것 같다"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상찬 감독은 지금도 야구 선수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2016년에는 구미에 있는 도개고 야구부를 창단해 감독을 지냈고, 지금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산동중 야구부 창단 감독으로 지내고 있다. 학생이 줄어 폐교 위기에 놓였던 산동중에 지난 2021년 야구부를 모집해 영천 지역 최초의 야구부를 창단하도록 힘쓴 게 이상찬 감독이다.

이교훈은 언제나 야구 불모지에서 선수 육성을 위해 힘쓰는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는 "아버지가 산동중학교 야구부를 창단하셨는데, 사람이 많이 없다. 6명 정도 되더라. 3학년들이 졸업하면 또 사람이 없고, 그래서 내가 가끔씩 아버지를 도우러 간다. 가면 애들이 엄청 순수하고 열심히 하는데 경기를 못 해서 엄청 속상해한다. 애들이 정말 밝고 예쁜데, 경기를 못하면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 진학도 힘들다고 하더라. 아이들이 꿈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고 현실을 짚었다.

이어 "산동중이 있는 곳이 작은 시골인데, 아이들을 야구를 하러 오려면 대구에서 와야 한다. 대구에서 오려면 거리가 있는데도 야구 연습하려고 애들이 온다. 그 열정을 보면 뭉클하고, 도와주고 싶고 그렇다. 아버지는 또 사람이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으시더라. 그래서 비시즌 때는 한번씩 가서 아버지를 돕는다"며 아버지의 노력으로 계속해서 어린 야구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길 바랐다.

아버지가 야구 불모지를 계속해서 개척하는 동안 아들인 이교훈은 프로 무대에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게 목표다. 올해는 1군 16경기에서 1승, 19⅓이닝, 평균자책점 5.59를 기록하면서 추격조 또는 롱릴리프로 큰 힘이 되고 있다.

이교훈은 "나는 일단 이곳 1군에서 버티는 게 목표다. 계속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첫 승은 솔직히 큰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 그냥 계속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고, 한 타자 한 타자 집중해서 막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 두산 베어스 이교훈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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