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채상병 순직 1주기…거짓과 위선의 공화국

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2024. 7. 1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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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불과 이틀 후면 채 상병이 경북 예천의 내성천에서 순직한 지 1주기가 된다. 그 사이 해병 장병의 사망은 무엇이 드러났고 무엇이 해결됐는가. 총론적으로 살펴보면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장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은 국회 문턱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순직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엄중한 수사"를 지시했고,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이런 식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대한민국에서 사단장을 하냐"고 역정을 냈다. 그의 변덕으로 사건은 난장판이 되다시피 했다. 채 상병은 '불귀의 객'에서 '영혼의 객'으로 부모와 국민들 가슴속에 아직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난 1월 내성천의 은빛 모래를 또렷이 기억한다. 반년이 지나고도 수마의 흔적은 여기저기 널려있었지만 모래만큼은 찬란했다. 그러나 내성천의 고요함 속에서 장병의 죽음에 대한 공허와 허망 또한 아주 컸다. 사건의 실체는 단순하다. 부모님의 말씀처럼 "누가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은 채 물속에 들여보냈냐"는 질문이다. 과실의 인과관계를 따져 책임을 물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사망 사건이 1년을 맞이하는 오늘까지 내성천의 모래수만큼이나 많은 고.위관들의 거짓과 위선을 목도해야 현실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책 <돌아오지 못한 해병>을 쓰기 전, 임성근 사단장과 지난 3월 비공개 통화를 했다. 임 사단장이 이미 입법청문회에서 증언했고, 경찰 수사 결과도 나온 만큼 그와의 비공개 통화 내용을 밝힌다. 그는 "절대 수중수색 지시를 안했다'며 "바둑판식 수색을 언급했지만 바둑판 수색은 물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수색이고, 그 다음의 우리의 작전지역은 지상 및 육상으로 한정돼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육지에서 하는거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단장과 포병대대장들은 '수중·수변 바둑판식 수색'에 왜 그렇게 고민이 많았을까. 당시 여단의 수송대장 등의 진술은 "사단장이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며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장이 위험하다는 사실도 사단장은 즉시하고 있었다. 그는 현장에 간 목적에 대해 "kavv(수륙양용장갑차)가 물에 둥둥 떠있으니 굉장히 위험해 봐주러 간 것"이라고 말했다. 물에 둥둥 떠 있는 장갑차의 목숨만큼 장병의 목숨을 걱정했을까.

임 사단장은 자신의 혐의에서 일단 빠져나왔다. 대신 여단장이 송치됐다. 7월 18일과 19일 임 사단장과 7여단장의 하루 종일 썀쌍둥이처럼 움직였다. 사단장이 지시하면 여단장은 받아내렸다. 그런데 경찰은 썀쌍둥이를 분리시켰다. 경북경찰의 거짓과 위선은 차고 넘친다. 그들은 해병대수사단이 사건을 이첩하기 전부터 자신들이 서둘러 수사하겠다고 종용했다. 그런데 정작 임 사단장을 불송치 결정하는데까지 1년을 허송세월했다. 모래수만큼 많았던 시간은 '마사지의 타임'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경북청 수사부장은 사건을 이첩받고도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회수를 해갈거냐"고 되물었다.(유재은 증인,입법청문회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


이종섭 장관과 임기훈,박진희 등 국방장성들의 거짓도 일상적이다. 이종섭은 해병대부사령관에게 <10가지 지시>를 하고도 "'누구누구 수사안동 안됨'이라는 지시는 예를들어 말한 것"이라고 태연하게 해명한다. 예를들어 지시한다는 해괴한 논리다. 그의 보좌관인 박진희는 "지휘책임 관련인원은 징계로 해달라"는 문자를 해병대사령관에게 보내놓고도 "그것은 장관 지시가 아니라 개인의 지시"라고 말한다. 거짓 앞에서 하극상은 손바닥 뒤집기와 같다. 임기훈은 대통령실 일반전화가 "안보 사안"이라고 위선을 떤다.

구명로비 의혹의 핵심으로 떠오른 주가조작 공범 이종호는 아예 '미치광이 전략'이다. VIP를 해병대사령관이라고 했다가 김건희 여사라 했다가,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허풍"이라고 떠듦으로써 녹취의 진실에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는 김건희 여사와 결혼 전에만 연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녹취를 들어보면 김건희 여사와 직간접적인 접촉을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뱉어놓은 말들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실과 주변인사들의 언어도 위선과 배째기의 극단이다. "국군통수권자가 이첩에 대한 의견도 못내냐"는 말에 "그럼 왜 격노했냐?"고 물으면 "격노도 못하냐"고 윽박지른다.

고 채 상병 할아버지가 "내가 80 평생을 살아보니 힘있는 놈들은 다 빠져나가고, 힘없는 놈들만 처벌받더라"고 박정훈 대령에게 1년 전 탄식했다. 사건을 지켜 본 국민들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채 상병 사망 사건은 수많은 사실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책임자 규명은 단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공화국에선 거짓과 위선이 1년 내내 진동하고 있다. 내성천의 모래를 다 파헤쳐서라도 채 상병의 원혼과 유가족의 아픔을 덮을 수 있는 진실이 드러나기만을 소망한다. 특검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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