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좋은 사이[유희경의 시:선(詩:選)]

2024. 7. 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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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언니가 곧 서울에 온대요.

 S는 시인이며 서울에 산다.

사실 S와 나는 막역한 사이가 아니다.

때로는 이유 없이도 곁을 내어주고 싶은 사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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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모든 사랑의 아른거림이 사실 나는 좋아요/ 헷갈림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완성할 수도 있으니까// 불러도 오지 않는 이름을 나눠 가졌다면/ 다가갈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고/ 찾아갔을 때 사라지고 없더라도/ 온종일 헤맬 수 있는 지도를 펼쳐 들고’

- 서윤후 ‘고양이가 되는 꿈’(시 산문집 ‘고양이와 시’)

S 언니가 곧 서울에 온대요. 소식을 전하는 J의 얼굴이 환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온다는 게 반갑고 좋다니 이상한데. 생각하면서 웃었다. 실은 나도 반갑고 좋아서. 그럼 우리 같이 만나자.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자. 약속을 잡았다.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S는 시인이며 서울에 산다. 가족의 간병차 한동안 고향 집에 내려가 있었다. 못 본 지 한참이다. 그러던 중 그의 새 시집과 산문집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만나볼 수 없을 때 읽는 친구의 시와 산문에는 어딘가 애틋한 면이 있었다. 사실 S와 나는 막역한 사이가 아니다. 일 년에 서너 번 볼까 싶으니, 냉정히 말하자면 알고 지내는 사이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S를 무척 좋아한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좋아함에 이유가 있을 리가. S를 언니라 부르며 따르는 J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S와 J 그리고 나, 세 사람은 약속대로 식사를 했다. 별다른 화제 없이도 자연스러운 대화는 오붓하고 따뜻했다. 사소한 농담에도 즐겁게 웃을 수 있었고, 근간의 사소한 일도 함께 걱정하고 기뻐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느긋하게 나눈, 오랜만의 저녁식사다운 저녁식사가 아닌가, 가만히 놀라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인기척에도 달아나지 않는 고양이였다. 그럴 뿐 아니라 우리 중 한 사람 발치에 다가와 앉기도 하는 거였다. 신기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고양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때로는 이유 없이도 곁을 내어주고 싶은 사이가 있다. 아니 그 곁에 머무르고 싶은 사이가 있다. 이유 없이, 이유가 없어 좋은 사이가 있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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