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꿈’ 담아… 학전, 새 싹을 틔우다
‘김민기 아카이브’ 구축
작품 기록물 등 디지털 보존
저작권 관리 중심 사업 변경
‘아르코꿈밭극장’ 탈바꿈
어린이·청소년 공연에 ‘방점’
문체부내 문화예술위가 운영
‘학전, 김민기의 꿈은 계속된다.’
소극장 문화의 상징으로 꼽히는 ‘학전’이 김민기의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김민기 대표의 작품 기록물과 학전에 얽힌 역사를 아카이브로 구축하고 저작권 관리를 위한 사업체로 전환하는 것이다. 학전 극장과 극단이 있던 공간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장으로 이어간다.
17일 학전 등에 따르면 학전은 1991년 3월 개관 이후 소극장 무대에 올려 왔던 공연작, 김 대표의 작품 활동상 등 기록을 디지털로 보존하는 아카이브를 마련하고 저작권 관리도 맡는 사업체로 변모한다.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우선 관련 자료를 전부 모아 정리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관리 체계를 만들면서 향후 구체적 방향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는 암 투병으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김 대표의 의중도 반영한 것이다. 김 팀장은 “학전은 계속된다는 의미”라며 “제대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학전의 사업자 명의가 유지되고 극장과 극단 위주였던 활동 내용만 변경하는 것이다. 재정난을 겪어 왔던 학전은 서울 대학로의 ‘학전블루 소극장’를 지난 3월, ‘학전그린 소극장’을 2013년 3월 폐관했다. 1994년 만들었던 극단은 ‘지하철 1호선’ 등 작품으로 한국 뮤지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특히 어린이·청소년 대상 활동을 강조했던 김 대표 뜻에 따라 전국 각지를 돌며 공연했다. 배울 ‘학(學)’·밭 ‘전(田)’ 이름 그대로 문화·예술 인재가 자라는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가수 고 김광석, 윤도현·박학기 등이 이곳을 거쳤고 배우 설경구·황정민·안내상·이정은 등을 배출했다. 또 ‘아침이슬’ 등 가수로서 김 대표의 활동을 아우른 전시 활동도 구상 중이다.
이날 학전 소극장이 있던 건물에서는 ‘아르코꿈밭극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학전의 한 축이었던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에 방점을 두고 한국문화예술위가 운영 주체로 나섰다. 학전 사무실이 있던 2층 공간은 어린이들과 그 학부모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기증받은 도서도 비치해뒀다. 기존 설비 중 누수 우려가 있던 배관을 보수했다. 개관식 프로그램은 어린이 참여 형식의 인형극과 판소리를 결합한 ‘와그르르르 수궁가’(움직이는 그림자 여행단) 공연, 체험 프로그램으로 손바닥 찍기 미술 등이 준비됐다. 아르코꿈밭극장은 학전 소극장 시절 입구에 세웠던 김광석 추모비, ‘지하철 1호선’의 독일 원작을 썼던 폴커 루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흉상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학전의 연혁을 밝힌 기념물을 그 옆에 새로 뒀다.
“김민기 작품을 보전하는 길은 ‘김민기 극장’ 설립뿐”
■ ‘지하철 1호선’ 원작자 폴커 루트비히 서면 인터뷰
“김민기의 작품을 보전하는 길은 한 가지. ‘김민기 극장’ 설립뿐이다.”
독일 극단 ‘그립스’(GRIPS)의 폴커 루트비히(사진) 대표는 ‘학전’의 대표작 ‘지하철 1호선’ 원작자다. 17일 서면으로 만난 그는 “김민기만이 할 수 있었던 방식으로 무대에서 관객의 현실을 재현하고 아동·청소년 그리고 나아가 성인을 위한 작품을 올리는 것”이라고 전제를 달고 이같이 주장했다. 이에 손사래를 칠 법한 김민기 대표 성격을 두고 루트비히 대표는 “그는 다른 이를 혼란에 빠뜨릴 정도로 한없이 겸손하다”며 “유럽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정도”라고 했다.
김 대표와 루트비히 대표는 ‘지하철 1호선’ 초연 이듬해였던 1995년 얼굴을 마주한 이후 우정을 이어 왔다. 그 공연이 1000회 차에 접어들었던 즈음 루트비히 대표는 학전의 저작권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는 “세계 150곳 넘는 극장에서 ‘Linie 1’(원작 명칭)을 연출했지만 그 안의 영혼을 이해하고 전달했던 연출가는 김 대표뿐”이라고 했다. 이어 “그 음악이 탁월했고 원작보다 더 강력한 정치성, 문학성이 있었다”고 짚었다. 루트비히 대표는 원작 중 희망 메시지를 담은 부분과 달리 김 대표가 위로 메시지로 일관한 대목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 점에서 김 대표와 나 중에서, 김 대표가 더 나은 현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전 소극장의 폐관 배경에 재정난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루트비히 대표는 “김 대표가 경제적 어려움을 벗지 못하는 동안 그 밑에서 연극을 시작한 많은 배우가 ‘스타’가 됐다. 그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간 학전 출신 배우 중 상당수가 유·무형의 지원 의사를 전했지만, 김 대표는 한사코 거절하며 그 같은 말은 꺼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루트비히 대표는 김 대표를 두고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암 투병 중인 김 대표를 향해 “다시 만나면 얼굴을 봐서 참 기쁘다는 말부터 하고 그의 멋진 아내와 아들의 안부를 물을 것”이라고 했다.
‘위암 투병’ 통원치료중… 어린이극 창작욕 불타
■ 김민기 근황은
암 투병 중의 김민기 학전 대표는 집과 병원을 오가는 치료로 건강 회복에 애쓰고 있다. 그 의지는 지난 33년간 학전을 지켰던 원동력이기도 한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창작욕에 있다.
17일 학전 등에 따르면 김 대표는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가능한 선에서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4기까지 접어든 위암의 간 전이 등 상황이 알려지며 그를 걱정하고 암 극복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문화예술계에서 이어져 왔다. 김 대표는 자신이 ‘미완’이라고 판단했던 어린이극의 완성도를 더 끌어올리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그리고 어린이극으로 묶는 ‘고추장 떡볶이’·‘우리는 친구다’·‘무적의 삼총사’·‘슈퍼맨처럼!’ 등 5개 작품의 완성도는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 김 대표 판단이다. 실수가 잦더라도 집안일을 해내는 형제의 이야기로 부모 세대에게도 교훈을 전한 ‘고추장 떡볶이’, 학원 12곳에 시달리는 ‘뭉치’의 이야기로 어린이들의 공감대를 얻었던 ‘우리는 친구다’ 등이 있다. 그 외 ‘굿모닝 학교’·‘친구는 게임 중’·‘그림자 소동’ 등 작품도 김 대표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손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암에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어린이극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고 시장 원리도 거슬렀다. ‘지하철 1호선’ 흥행이 한창이던 때 수익성이 불투명한 어린이극 공연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 바깥에서 공연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무대를 올렸다. 김 대표는 이 같은 활동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겼다. 충남 보령시 탄광촌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제작했던 뮤지컬 어린이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는 아빠 얼굴을 창피해하는 아이들을 웃게 만들었다.
가수로서의 김 대표는 소위 ‘저항가요’로 자신을 기억하고 민주화 상징으로 추켜세우는 세간의 시선을 거부했다. ‘아침이슬’·‘상록수’ 등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백구’·‘인형’·‘식구 생각’·‘꽃 피우는 아이’ 등 동요 작가이기도 했다. 정작 노래 부르기는 꺼리는 김 대표가 저항가요로 묶이는 노래도 포함한 39곡으로 1993년 음반을 냈던 것도 학전 운영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자금으로 김 대표는 어린이극 무대를 이어갔다. 그의 동요 ‘고무줄 놀이’는 철길 위로 뛰어가는 송아지와 염소를 떠올리게 하며 웃음을 짓게 하고, ‘어젯밤 꿈에 엄마가’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가사와 선율로 절절한 감정을 건드린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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