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만리,성시인문(縱橫萬里-城市人文) ⑫] 일년내내 선선한 고지대(高地帶), 고문화(古文化)의 도시 : 윈난(雲南) 리장(麗江) (글 : 한재혁 전 주광저우 총영사)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리(萬里)'였다. 만리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무더위와 장마로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 한여름이 되면 중국에는 더운 것으로 유명한 곳도 많지만, 반대로 시원한 것으로 인기 있는 곳도 많다. '피서 성지(避暑聖地)'로 불리는 곳들로는 지린 창춘(長春), 후난 장자지에(張家界, 장가계), 헤이룽장 이춘(伊春), 윈난 쿤밍(昆明), 쓰촨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 후베이 션농쟈(神農架), 구이저우 리뽀(荔波), 신장 카나스(喀納斯) 등을 든다. 그중 사시사철 시원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면서 눈 덮인 설산(雪山)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리장(麗江)을 들 수 있다.
리장은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의 해발 2,400m 높이 고원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인 1월의 일 평균기온은 0.6~14.1도, 여름인 7월의 일 평균기온은 15.0~23.4도 정도이다. 여름에는 깐수앙(乾爽)하다 하여 시원하면서 쾌적한 날씨로, 겨울에는 누안훠(暖和)하다 하여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로 일 년 내내 여행의 선호 지역으로 꼽힌다.
리장 시내와 고성. 출처 : 바이두
리장은 남방 실크로드(絲綢之路)와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요한 통로이다. 윈구이 고원(雲貴高原)이 칭짱 고원(靑藏高原)과 만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높은 산은 5,596m의 옥룡설산(玉龍雪山, 위롱쉐산)이다. 옥룡설산은 현지 나시족들이 하늘의 산(天山)이라고 부르는 영산(靈山)이자 리장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산의 13개 봉우리가 눈에 덮여 연이어 있는 모습이 마치 용이 춤추며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산은 석회암과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흰색과 검은색이 함께 보인다. 그래서 흑백설산(黑白雪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옥룡설산. 출처 : 바이두
산 입구에서 전용 셔틀버스를 두 차례 갈아타고 케이블카 시작점인 해발 3,356m 지점까지 와서, 다시 2.9km나 되는 길이의 케이블카를 타고 4,506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어 일반 관광객들도 휴대용 산소통의 도움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 4,680m 높이에서 주봉(主峯)을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산 중턱에서는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장이모(張藝謀) 감독이 연출한 대형 야외공연극 '인상 리장(印象麗江)'이 공연된다.
'인상 리장' 공연. 출처 : 바이두
리장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나시(Naxi, 納西) 민족의 집거지로 유명하다. 30만 명 정도 되는 나시족 인구의 2/3가량이 리장에 거주한다. 나시족은 일찍이 시문(詩文), 조각, 회화, 음악과 무용 등이 발달하였고, 지금도 쓰는 둥바(東巴) 문자로 유명하다. 물체를 형상화한 상형문자로 문자의 '살아있는 화석(活化石)'이라고도 불린다.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단순화한 문자가 1,400여 자나 되며 현재도 쓰이고 있어서, 리장 시내 곳곳에서 중국어나 영어에 병기된 재미있는 문자를 발견할 수 있다. 둥바는 나시 언어로 현자(賢者)를 뜻하며 종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东巴 문자 (시내 피자헛 간판 표기, 올라가다(登)). 출처 : 바이두
리장 시내에는 송나라 말기 조성된 고성(古城)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중국 내 최상급 5A 경관지이다. 현재는 고택(故宅), 서원, 박물관, 사찰, 전망대, 다리(古橋) 등이 복원 또는 새로 건축되어 문화 관광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둥바 민속문화에 기반한 음악 연주나 제례, 점복(占卜) 의식도 재현하여 공연되기도 한다. 나시족의 전통 음식도 색다른데, 찹쌀밥이나 불고기, 두부 등 우리 음식과 비슷한 먹거리도 많다. 같은 윈난성 내인 푸얼(普洱)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이차(普洱茶, 푸얼차)도 리장 시내 곳곳에서 쉽게 시음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보이차는 흑차(黑茶)이자 재가공 후발효차(後醱酵茶)로 분류된다.
검붉은 오렌지 빛이 돌고 은은한 향이 오래간다. 발효 정도에 따라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로 나뉜다.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애용되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때부터라고 한다. 보이차는 뜨거운 물에 찻잎만을 우려 마시기도 하지만, 요즘은 기호에 따라 국화(菊花)나 서양삼(西洋蔘), 말린 낑깡(甘橘) 등을 함께 넣어 마시기도 한다.
커피 투어 광고와 윈난 커피. 출처 : 바이두
또 다른 기호음료인 커피도 중국 생산량의 99%가 윈난에서 나온다. 윈난 커피 역시 푸얼 부근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2022년 연 생산량이 11만 톤 정도로 약 40억 잔 분량,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1.1%에 해당한다고 한다. 흑차의 고장 푸얼시는 커피 생산지 전문 투어 코스를 개발하기도 하고 교육기관도 만들며 커피 생산에 적극적인데, 멀지 않아 푸얼은 차보다 커피로 더 유명해질 수도 있겠다.
리장 시내 곳곳의 커피숍에서 드립 또는 추출한 윈난 커피를 맛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마시는 블랜딩 커피에 비해 진하면서 연한 신 맛에 강한 쓴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윈난농업대학(雲南農業大學)은 중국 최초로 올해부터 4년 학부 과정으로 커피학과(咖啡科學與工程)를 개설하여 학생을 모집한다고 한다.
호도협. 출처 : 바이두
리장과 인근에는 자연경관이 뛰어난 볼거리도 많은데, 중국에서 가장 깊은 협곡인 호도협을 들 수 있다. 리장 시내에서 80km 떨어져 있는 호도협(虎跳峽, 후탸오샤)에 가보면 옥룡설산 등 5,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엄청난 양의 계곡물이 호랑이가 뛰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좁다는 50m 넓이의 협곡 암석들 사이를 헤치고 급류로 흘러 내려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현장을 본 사람들은 소동파(蘇東坡)의 시구인 "어지러운 돌들이 날아 하늘을 가르고(亂石穿空), 성난 파도가 기슭을 부술 듯 때리며(驚濤拍岸), 천 겹 쌓인 눈들을 말아 올리는구나(捲起千積雪)"를 떠올리곤 한다. 윈난에는 리장 외에 수려한 경관과 역시 일 년 내내 적당한 온도 습도를 보이는 지역으로 쿤밍(昆明)과 샹그리라(香格里拉)도 있다. 대개 1-2주 코스로 이 3곳을 여행하기도 한다.
리장은 10여 년 전에는 서양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었고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들의 국내 여행 선호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먼 지역이지만 전통가옥의 건축 양식이나 음식 문화 등이 우리와 유사한 점이 있다. 몇 년 전 리장에서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여러 행사가 개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