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아이돌 ‘아중’을 아십니까

한겨레21 2024. 7. 17. 08: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경만보]중국 쑤저우의 일본인 모자 습격 사건으로 본 중국의 극우주의의 역사
중국 에스엔에스에 올라온 ‘아중오빠’를 찬양하는 포스팅 글들. 에스엔에스 갈무리

1989년 6월. 중국 베이징 천안문(톈안먼)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 물결은 전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덩샤오핑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는 무력진압을 결정했다. 천안문 사건 뒤 중국 지도부는 ‘반혁명 폭동’이 일어난 가장 중요한 원인을 ‘사상교육과 애국주의 교육의 부재’라고 판단했다. 천안문 사건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총서기가 된 장쩌민은 그해 9월 열린 건국 40주년 기념식에서 “모든 인민,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사상교육과 애국주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2년 10월, 장쩌민은 제14차 당대회 보고를 통해 애국주의 교육의 전면화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 후 중국의 각급 학교에서는 애국주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쩌민이 제시한 애국주의 교육에 관한 핵심 내용 중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애국을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직접 실천해야 한다고 교육해야 한다. 만일 누가 국가와 민족, 사회주의 사업에 해를 끼치는 것을 발견한다면 참지 말고 투쟁해야 한다.”

야스쿠니신사 테러 후 중국서 ‘애국지사’로

2001년 8월16일. 한 남자가 일본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신사 문 앞에 도착했다. 일본 도쿄의 한 통신회사에서 일하는 펑진화였다. 퇴근 뒤 그는 상점에 들러 붉은색 스프레이 9병을 산 뒤 신사로 향했다. 경비가 삼엄했지만 그는 교묘하게 빈틈을 뚫고 들어가 신사 문 앞의 석구(石狗)에 스프레이로 ‘죽일 놈’(该死)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 전날인 8월15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애국을 머리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펑진화는 곧바로 현장에서 검거됐다.

1970년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펑진화는 여느 평범한 중국인들과 다를 바 없는 성장 과정을 거쳤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의 한 국유기업에 취직했고, 우연한 기회에 일본 유학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일본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한 뒤, 도쿄에 있는 도요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뒤에는 통신회사의 중국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정치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소식을 듣자 ‘머리 뚜껑’이 열린 것이다. 그의 행동이 알려지자 중국 내 모든 매체는 그를 ‘민족 영웅’ ‘중국인의 체면을 살린 애국 영웅’이라며 대대적인 ‘영웅 대접’을 했다. 중국 외교부도 그를 적극 옹호하며 석방과 조기귀환을 위해 정치·외교적으로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펑진화는 일본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나 곧바로 중국으로 ‘금의환향’했다. 그 후 그는 일본과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점거·수호 운동을 주도하는 등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애국지사’가 됐다.

2017년 개봉했던 중국의 애국주의 액션영화 <전랑2> 포스터. 배급사 아이엠 제공

배우 자오웨이 ‘똥물 투척’의 진실

2001년 12월28일. 당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로 활동하던 자오웨이가 후난의 한 방송사 개국 6주년을 축하하는 무대에 등장했다. 자오웨이는 드라마 <황제의 딸>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자오웨이가 무대에 오른 직후 한 남자가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그 남자는 자오웨이의 몸과 머리에 똥물을 끼얹었다. 며칠 뒤 홍콩 언론과 잡지 등에 자오웨이가 머리에 똥물 테러를 당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가해자는 우씨 성을 가진 30살의 비교적 젊은 남성이었다. 그해 12월 초, 일본 욱일기가 디자인된 옷을 입은 자오웨이의 사진이 한 패션잡지 표지로 실린 게 알려져 중국에서 큰 반향을 몰고 왔다. 곳곳에서 빗발치는 항의와 분노가 쇄도하자 12월10일, 자오웨이는 언론매체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가해자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구치소에서 약 13일간 구류된 뒤 석방됐다. 언론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 역시 자신을 ‘매국노 얼굴에 똥물을 끼얹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이듬해 3월 우한에서 발행되는 잡지 <다궁>(打工)의 ‘독점 보도’에 따르면,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 귀신’들에게 잡혀가 만주철도 부설에 강제동원됐다가 현장에서 일본인들에게 맞아 죽었고, 할머니 역시 일본인들에게 능욕당한 뒤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가 자리잡고 있었고, 커서는 다니던 좋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난징대학살 유적지를 찾아갔으며, 후난 창더의 일본 세균전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는 등 일본의 만행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베이징청년보> 기자와 만난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 ‘독점 보도’는 다 날조된 것이며 자신은 그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가 자오웨이에게 똥물 테러를 가할 생각을 한 것은 순전히 ‘모욕과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였다고 <베이징청년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자오웨이가 국가와 민족의 존엄을 해치고 모욕했는데도 자성하기는커녕 부끄러움을 모르고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반격’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개인과 국가의 존엄을 침해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반격을 가할 것이다. 중국 인민들은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자오웨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사이버 공간 넷우익 형성 조장한 중국 정부

2012년 말. 시진핑이 국가주석직에 오른 뒤 ‘애국주의 교육’은 더욱 체계적인 방식으로 퍼져갔다. ‘시진핑 시대’가 시작된 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애국주의 교육은 인터넷과 영화, 드라마 등 대중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친근하게’ 이뤄졌다. 2015년 우징이 주연하고 만든 영화 <전랑>(战狼)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2017년에 나온 속편 <전랑2> 역시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영화 속 대사도 회자됐다. 영화에서 주인공 우징은 마치 관객을 보고 말하듯이 이렇게 외쳤다. “우리 중화민족을 해치는 자들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쫓아가 반드시 징벌한다. (…) 재외 중국인이여 기억하라. 당신 뒤에 강한 조국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조국의 상징’이라는 듯이 중국 여권을 내밀었다. 화면 가득 붉은색 중국 여권이 클로즈업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우징은 당시 한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명언을 남겼다. “나는 중국인입니다. 애국은 무죄입니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애국주의도 흥행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와 외교부 대변인들의 입도 점차 ‘늑대전사’처럼 거칠게 변해 영화 제목을 빗대 ‘전랑 외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2019년 10월1일. 건국 70주년 열병식이 성대하게 개최됐을 때 당시 중국 인터넷에서는 ‘아중오빠(阿中哥哥)의 생일 축하하기’라는 검색어가 온 사이버 공간을 뒤덮었다. ‘아중오빠’는 주로 젊은 소녀들이 주축인 애국주의 팬클럽에서 시작된 말로 ‘중국’을 친근하게 부르는 용어다. 그해 70주년 국경절을 전후해 ‘아중오빠’는 중국 내 애국 팬덤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에게는 아중이라 불리는 아이돌이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 아중오빠를 지키자”라는 구호가 온 사이버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아중오빠’의 등장은 중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본격적인 ‘팬덤 애국주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을 시사했다. 중국 공산당 청년조직(공청단)도 홈페이지 프로필을 ‘아중오빠’로 바꾸며 적극적인 ‘사이버 애국주의’ 분위기로 몰아갔다. 2019년 홍콩 사태 이후 ‘아중오빠’들의 팬덤 애국주의는 급기야 배외주의로까지 발전해갔다. 특히 최근 들어 일본과 일본인을 향한 공격적인 배외주의 영상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전국 각지에 있는 일본 학교는 ‘스파이 양성소’이고, 일본이 이 학교들을 통해 중국의 이익을 훔치고 해치는 어린 스파이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음모론’ 동영상도 퍼져나갔다.

2024년 6월24일, 중국 쑤저우에서 벌어진 일본인 모자 습격 사건 현장. 엔에이치케이 갈무리

쑤저우 일본인 습격 후 ‘애국주의’의 결말은

2024년 6월24일. 쑤저우시에서 한 남자가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일본인 모자를 습격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자는 모자를 습격한 뒤 일본 아이들이 타고 있던 스쿨버스에 뛰어들어 계속 테러를 할 생각이었지만 차량에 동석하고 있던 중국인 안전요원 후여우핑의 필사적인 저지로 실패했다. 후여우핑은 이틀 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5월11일에는 중국 동북지역 지린시의 한 공원에서 교환교수로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네 명의 미국인 대학 강사가 대낮에 습격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 마오닝은 쑤저우 사건에 대해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우발적인 사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언론들은 후여우핑 사망 뒤 “후여우핑은 중국인의 용기와 전통 미덕 정신을 대표하는 숭고한 희생자”라고 애도했다. 그러자 한 네티즌은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다면 일본인 모자와 스쿨버스를 습격한 그 남자는 중국인의 무슨 정신을 대표하는가?”

현장에서 붙잡힌 쑤저우 사건 용의자에 대해 알려진 신상정보는 52살 무직이라는 사실이 전부다. 자오웨이에게 똥물을 끼얹고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분노하며 스프레이 테러를 했던 오래전 ‘애국주의 선배’들처럼 그 남자가 어떤 모욕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칼을 들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대신 중국 정부는 갑자기 사이버 공간에서 반일 대립과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모든 콘텐츠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진화해오고 팬덤화된 중국 애국주의 ‘넷우익’들도 사라질 수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