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바보’였던 일본인들, 요즘 돈 어떻게 굴리나 봤더니

이경은 기자 2024. 7. 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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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가계 금융자산 2경원으로 사상 최대
상위 2개 펀드에만 반년간 17조원 유입
[왕개미연구소]

일본에는 ‘예금바보(預金バカ)’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금·현금 선호 현상이 강하다.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라는 오래된 경제 고질병 때문이었다.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지 않고 집안에 두는 단스(タンス·장롱)예금도 1000조원에 달할 정도다.

그런데 최근 일본인들의 가계 자산 운용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선 ‘주식하면 패가망신’이라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많았다. 하지만 생활 물가가 연일 치솟는 인플레 시대가 찾아오자, 위험자산 투자에 눈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세계경제 대예측>의 저자 아사쿠라게이(朝倉慶) 아사쿠라에셋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은 지난 30여년 간 주가 지수가 내리기만 했기에 주식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단스예금을 해도 괜찮지만, 인플레 시대에는 (가치가 떨어지므로) 현금으로 들고 있으면 손해가 크다”고 말했다.

아사쿠라씨는 또 “일본은 60대 이상 고령자가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데 평생 주가가 떨어지는 것만 경험했기 때문에 생각을 선뜻 바꾸긴 어렵다”면서 “하지만 인플레 시대에 투자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부(富)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걸 깨닫게 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러스트=김성규

✅日 가계 금융자산 역대 최대

글로벌 증시 랠리가 이어지면서 일본 가계의 부(富)는 빠르게 늘고 있다. 16일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3월 말 기준 2199조엔(약 1경9000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작년 초부터 5분기 연속 상승세다. 주식과 펀드 투자로 수익을 내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월부터 정부가 절세 혜택을 대폭 늘린 신상품(신NISA·소액투자비과세제도)을 내놓으면서 더욱 탄력이 붙었다. 투자에 눈뜬 일본인들 사이에서 신NISA는 필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일본은 주식 매매 차익과 배당 수익 등에 전부 세금(약 20% 분리과세)이 붙는데, 신NISA로 투자하면 세금이 붙지 않는다. 일본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월 중 신NISA를 통한 투자금 규모는 6조6151억엔으로, 전년 동기 규모(1조5813억엔)를 크게 웃돌았다.

가계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현금·예금 비율도 감소 추세다. 지난 3월 말 기준 일본 가계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현금·예금 비율은 50.9%였다. 아직도 절반 이상이긴 하지만, 작년 3월 말(54%)과 비교하면 크게 낮아졌다.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3월 말 기준 2199조엔(약 1경9000조원). 한국은 가계(비영리단체 포함) 금융자산이 작년 말 기준 5234조원이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일본인들이 찜한 인기펀드 TOP5

1000조엔에 달하는 현금을 쥐고 있는 일본인들은 올 상반기 어떤 상품에 많이 투자했을까? 지난 11일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미츠비시UFJ운용이 굴리는 ‘eMAXIS Slim 전세계주식’ 펀드에 가장 많은 자금이 몰렸다.

이 펀드는 12일 기준 순자산 금액이 4조엔(약 35조원)에 달하는 공룡 펀드다. 올 상반기(1~6월)에만 1조3440억엔이 유입됐다. MSCI의 올컨트리월드인덱스(ACWI)에 연동되어 움직이는 인덱스펀드인데, 선진국·신흥국 등 47곳에 투자한다. 미국 투자 비율이 65% 정도로 가장 높고 일본은 5% 정도다. 배당금 재투자 가정시 1년 수익률은 40%.

자금 유입 2위 펀드도 미츠비시UFJ운용 상품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미국 증시에 집중 투자하는데 6개월 동안 1조엔의 자금이 몰렸다. 결국 일본은 미국 중심 투톱 펀드로 반년 만에 2조엔(17조5000억원)의 뭉칫돈이 들어간 것이다. 3위도 미국에 투자하는 상품인데, 분배금이 매달 나오는 ‘매월 결산형’으로 한국에서 인기 있는 월(月) 배당 상품과 같은 구조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일본에서도 뜨거운 美 투자붐

운용업계 고위 관계자는 “자금 유입 상위에 있는 전세계주식(올컨트리) 펀드도 어차피 미국 주식이 가장 높으니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미국 쏠림이 강한 것 같다”면서 “펀드 리스트 중에선 인도 인프라 펀드에 돈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또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올 상반기 iShares Core S&P500(티커 IVV)에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됐고, 그 다음이 Invesco QQQ(나스닥100)였다”면서 “한국도 Tiger미국S&P500 ETF에 가장 많은 자금(약 1조3000억원)이 들어왔는데 미국이라는 핵심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중요도 인식은 비슷해 보인다”고 말했다.

환노출형 펀드가 3~4위 펀드를 차지한 것과 관련해선 일본 개인 투자자들도 엔·달러 환율 상승(달러 강세)을 예상하고 환노출형 상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환노출형 상품은 환율 변동의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방식인데, 미래에 엔·달러 환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환노출 전략을 택해야 환차익을 챙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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