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태극전사가 간다 ⑰ 브레이킹 김홍열
"파리서는 더 높은 자리 올라가겠다…전세계 비보이·비걸에 보여주고파"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전설은 어느새 불혹을 앞뒀다.
비보이 '레전드' 김홍열(Hongten·도봉구청)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1984년생 김홍열은 한국 브레이킹 선수 중 유일하게 2024 파리 올림픽에 나선다.
중학교 2학년 때 반 친구가 선보인 간단한 동작을 따라 하다가 브레이킹의 길을 걷게 된 김홍열은 세계 최고 권위 대회인 레드불 비씨원 파이널에서 2006년, 2013년, 2023년까지 세 차례 우승한 명실상부한 '레전드'다.
이 대회 3회 우승은 김홍열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메노 판호르프(Menno)만 달성했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도 따냈다.
그런 김홍열에게도 남은 목표가 있다.
올림픽 메달이다.
브레이킹은 이번 파리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지난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최종 예선 대회인 올림픽 퀄리파이어 시리즈(OQS) 1차 대회에서 4위에 올랐던 김홍열은 2차 대회에서는 순위를 한 단계 더 끌어 올려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최종 2위로 파리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컬처 영역에서 이미 이룰 걸 다 이룬 김홍열에게 스포츠 영역의 올림픽은 '도전' 그 자체다.
한국은 물론, 자신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비보이, 비걸에게 나이가 들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이젠 각종 대회에 나가면 자기 나이의 절반에 불과한 상대 비보이와 배틀을 펼치는 만큼, 시간의 풍파를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다.
김홍열은 즐기는 마음으로 올림픽에 임해 메달이라는 좋은 결과까지 얻겠다는 각오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회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 기수로 나서 태극기를 흔든 경험에 대해 "처음으로 느껴보는 광대한 페스티벌 같았다. 너무 즐거워서 기억에 남는다"고 한 김홍열은 파리에서도 '즐기는 자'의 여유를 뽐낼 생각이다.
젊은 선수들보다 체력은 떨어질 수 있지만, 김홍열은 완숙함을 무기로 점점 농익은 브레이킹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 김홍열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고 불과 2주 뒤 참가한 레드불 비씨원에서 10년 만에 다시 챔피언 벨트를 품에 안았다.
김홍열은 "26년가량 춤을 추면서 '우승은 이제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점점 발전하는 게 느껴졌다"며 "(올림픽 예선전에서는 3위를 했으니) 올림픽 본선에서는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홍열은 파워무브(고난도 기술)와 스타일무브(음악의 분위기와 흐름에 어울리는 무브)를 적절히 섞는 노련함과 밸런스로 심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브레이킹이 스포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이래, 눈길을 사로잡는 고난도 기술로 승부를 보는 파워무브형 비보이가 이전보다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김홍열은 음악의 흐름과 분위기, 박자와 마치 한 몸이 된 듯한 무브 속에 파워무브를 적절히 녹인다.
무대에 선 채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은 뒤 플로어(무대 바닥)에서 놀리는 화려한 잔발, 순간적으로 등허리를 휘어 만드는 놀라운 동작들로 MC와 관중의 탄성을 유도한다.
지난 OQS 2차 대회 3·4위전에서는 고난도 기술을 연달아 선보인 일본의 하시카와 잇신(Issin)에게 맞서기 위해, 물구나무를 선 채 통통 튀는 박자에 맞춰 두 다리를 앞뒤로 재치 있게 흔들어 관중의 환호를 끌어냈다.
'재간'으로 예열을 마친 김홍열은 토마스(두 손으로 땅을 짚고 앉은 자세로 엉덩이를 띄워 두 다리의 원심력을 이용해 회전하는 기술)에서 에어트랙(양팔로 물구나무를 선 채 두 다리를 힘차게 돌리며 회전하는 기술)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파워무브 연계로 심판진의 마음을 빼앗았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무려 10초간 프리즈(기술과 무브 도중에 한 손이나 두 손을 땅에 짚고 특정 자세로 수 초간 정지하는 기술)를 유지하며 뛰어난 균형 감각과 유연성을 뽐내 쐐기를 박기도 했다.
김홍열이 나서는 브레이킹 종목은 파리 올림픽 최후반부에 열려 대미를 장식한다.
브레이킹 종목 비보이 부문은 현지시간으로 8월 10일 열린다.
16강 라운드로빈부터 8강, 준결승, 결승 토너먼트까지 모두 하루에 열린다.
김홍열이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이날 하루 동안 총 7경기를 치러야 한다.
불혹의 김홍열은 21라운드를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한 체력 강화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정형식 브레이킹 국가대표팀 감독도 "김홍열의 훈련량은 다른 선수들의 2배 이상"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가 높다.
김홍열은 "성실한 선수, 모범이 되는 선수로 남고 싶다.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댄서라는 이름으로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진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김홍열은 끝까지 달린다.
soru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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