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백화점, 23년 만에 현대홈쇼핑 지분 처분한 사연
실적 악화에 현금 조달 필요성 커져
경영권 매각 추진하며 사업 철수 수순
대구의 향토 기업인 대구백화점이 23년간 보유해온 현대홈쇼핑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실적 악화로 현금이 마르고 있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대구백화점은 대기업 백화점 공세에도 계속 버텨왔지만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영권 매각을 추진 중이다.
18억 투자가 큰 수익으로
대구백화점은 지난 16일 장 개시 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를 통해 현대홈쇼핑 지분 38만2600주(3.2%)를 전량 처분했다. 매각 금액은 178억원이다. 회사 측은 "투자주식 처분을 통해 수익을 실현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을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대구백화점이 현대홈쇼핑에 투자한 것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백화점은 그해 5월 7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새롭게 설립된 현대홈쇼핑에 출자했다. 총 출자금액은 18억원이었다. 홈쇼핑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다각화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현대홈쇼핑이 몇 차례의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대구백화점의 지분율은 기존 4.3%에서 3.2%로 낮아졌지만 지분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현대홈쇼핑이 2010년 9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대구백화점 보유 지분 가치도 크게 뛰었다. 현대홈쇼핑 상장 당시 공모가는 9만원으로, 대구백화점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344억원으로 뛰었다. 이후 대구백화점은 현대홈쇼핑 배당을 통해서도 쏠쏠한 수익도 얻었다. 현대홈쇼핑은 상장 이래 매년 결산배당을 지급했는데 14년간 대구백화점이 받은 배당은 총 93억원에 달한다. 18억원을 출자해 수백억의 차익을 얻은 셈이다.
대구백화점은 현대홈쇼핑 지분을 담보 삼아 자금을 조달하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2014년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대구백화점 2대 주주였던 여신전문금융사 CNH가 지분율을 끌어올리고 대구백화점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대구백화점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 293억원 어치를 사들이기로 했는데, 이 중 200억원의 자금 조달을 위해 현대홈쇼핑 주식을 담보로 활용했다. 대구백화점은 2017년에도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차입을 하면서 현대홈쇼핑 주식을 담보로 맡겼다. 이 차입이 연장되면서 현대홈쇼핑 주식은 현재도 한국증권금융에 담보로 묶여 있다.
대구백화점은 앞으로도 차익을 실현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단으로 현대홈쇼핑을 활용할 수 있다. 현대홈쇼핑이 올해 주주 환원 정책을 강화하면서 더 늘어난 배당 수익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현대홈쇼핑의 주가가 4만원대까지 주저앉으면서 추가 수익 대신 현금화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향토 백화점의 몰락
대구백화점은 최근 실적이 크게 악화해 현금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기업 백화점의 공세로 입지가 좁아지던 차에 코로타19 사태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대구백화점은 1944년 설립돼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은 대구의 대표 향토 기업이다. 고(故) 구본흥 창업주는 1944년 '대구상회'를 설립한 뒤 사업을 확장해 1969년 대구 동성로에 대구백화점을 개점했다. 이 백화점은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었다.
1988년에는 증시에 입성했고 1993년에는 대백프라자를 열며 사업도 확장했다. IMF 외환위기로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2년만인 2000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워크아웃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대구백화점의 2001회계연도(2001년 4월~2002년 3월) 매출액은 5304억원, 영업이익은 88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2002년 롯데백화점, 2011년 현대백화점, 2016년 신세계백화점 등 대기업들이 대구에 진출하면서 대구백화점의 입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주요 명품 브랜드들마저 빠져나가며 타격을 입었다.
2018년에는 대백아울렛 동대구점을 열었지만 17개월만에 문을 닫고 현대시티아울렛에 임대를 줬다. 이어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대구백화점은 직격탄을 맞았다. 결국 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대구백화점 본점은 무기한 휴점에 들어갔고 결국 폐점 수순을 밟았다. 현재 대구백화점이 운영 중인 점포는 대백프라자 한곳뿐이다.
대구백화점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연결 기준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는 매출액이 676억원까지 줄었다. 매출 감소와 손실 누적으로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91억원에 불과하다.
충청 지역의 세이백화점이 2022년 매각된 후 지난 5월 영업을 종료하면서 대구백화점은 국내에 남은 유일한 향토 백화점이 됐다. 그러나 대구백화점 역시 80년 역사를 끝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대구백화점은 2022년 폐점한 본점 매각을 추진했으나 매각 상대가 중도금을 납부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경영권 매각을 시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 백화점들은 초기 유통 시장을 선도하며 크게 성장했으나 고급화, 대형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커머스 시장 성장으로 경쟁력을 더욱 잃었다"고 설명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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