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살며 이런 비 처음, 마당이 순식간에 물바다"
유영규 기자 2024. 7. 17. 06:48
▲ 폭우로 엉망진창 된 집 청소
"90년 가까이 살면서 이렇게 비가 많이 쏟아진 건 처음이여."
역대급 폭우가 내린 16일 전남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사는 김 모(89) 씨는 침수로 흙투성이가 돼버린 집에서 쓰레받기와 걸레로 남아있는 물을 퍼내거나 닦아내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오랜 시간 쭈그려 앉아 있었던 탓에 연신 아픈 허리를 두드리면서도 물을 퍼내는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벽 시간 자고 있던 김 씨는 갑작스러운 폭우에 놀라 나가본 마당에 물이 순식간에 차올라 무릎까지 잠기던 순간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습니다.
엄청난 비에 집담 밖으로 나갈 용기도 나지 않았고, 그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 피해 없이 비는 그쳤지만, 물이 방 안까지 넘쳐 들이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김 씨는 "다른 사람들은 도로에만 물이 고였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지대가 낮아서 물이 차고 넘친 것 같다"며 "살다 살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 오래된 주택에 살던 박 모(84) 씨도 폭우처럼 퍼붓던 빗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바가지로 빗물을 퍼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신고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의 도움으로 대피했다가 돌아온 집은 난장판이 돼 있었습니다.
박 씨는 "꽃무늬 장판이 시커멓게 변해있고, 신발이며 쓰레기들이며 집 밖으로 다 떠내려가 버렸다"며 "안방 장판도 흥건해져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박 씨처럼 빗물에 잠긴 집은 이 마을만 4곳입니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만 홀로 살고 있어 비가 그치자 동네 이웃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침수 복구를 도왔습니다.
누렇게 흙으로 뒤덮인 장판을 걷어내고 주방 물품과 옷가지들을 정리해 구석구석 끼인 흙을 씻어내거나 방바닥을 손걸레로 닦아냈습니다.
침수가 잦은 해당 주택을 자주 도우러 왔던 자원봉사자들의 막힘없는 손길에 집 안은 점차 제모습을 찾아갔습니다.
박 씨는 "가까스로 대피했지만,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며 걱정했는데 다행히 동네 이웃들이 도와줘서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새벽 전남 남해안에 내린 집중호우로 전남 해남과 진도 등 주택 124채가 침수돼 주민 65명이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습니다.
전남 농경지 279㏊가량이 물에 잠겼고, 토사가 유실되거나 담장이 무너지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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