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이 정말 중요한 시기"…'48세 젊은 감독' 국민타자는 왜 당장 피치컴 활용에 부정적일까 [오!쎈 울산]
[OSEN=울산, 조형래 기자] “저는 당장 선호하지 않습니다.”
KBO는 지난 15일 경기 중 투수와 포수 간 사인 교환을 할 수 있는 장비인 피치컴 세트를 10개 구단에 배포했고 구단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피치컴 사용 방법과 규정 등을 안내했다. 지난 1일 피치컴 장비에 대한 전파인증을 완료했고 16일 경기부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무 사용 대상은 아니다.
KBO가 배포한 피치컴 세트는 사인을 입력하는 송신기와 이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수신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세트는 송신기 3개, 수신기 12개로, KBO 리그와 퓨처스리그 모든 팀에 각 1세트가 전달된다.
송신기에는 9개의 버튼이 있어 사전에 설정된 구종과 투구 위치 버튼을 순서대로 입력하면 수신기에 음성으로 전달된다. 송신기는 투수나 포수에 한해 착용 가능하며, 투수의 경우 글러브 또는 보호대를 활용해 팔목에 착용한다. 포수의 경우 팔목, 무릎 등에 보호대를 활용해 희망하는 위치에 착용할 수 있다.
수신기는 모자 안쪽에 착용한다. 투수나 포수 외에도 그라운드 내 최대 3명의 야수가 착용 가능하며 덕아웃 및 불펜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KBO는 설명했다.
KBO는 ‘피치컴은 경기 중 수비팀의 원활한 사인 교환을 가능케 해, 경기 시간 단축 등 팬들의 쾌적한 경기 관람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치컴을 먼저 도입한 메이저리그는 본래 다른 이유를 안고 있었다. 사인 훔치기 방지의 목적이었다.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파문 이후 논의가 본격화 됐고 2022시즌부터 피치컴을 정식 도입했다. 투수와 포수가 피치컴 송수신기로 사인을 주고 받는 모습은 이제 보편화 됐다.
피치컴이 도입되면서 내년 시즌 피치클락까지 도입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전망. 김경문 한화 감독은 피치컴 활용에 전향적으로 열려 있었고 당장 피치컴을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KT 위즈는 지체 없었다. 이날 선발 투수였던 웨스 벤자민이 곧바로 피치컴을 활용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써봤기에 익숙했고 코칭스태프에 피치컴 활용 의사를 전달했다.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 장성우는 우측 무릎에 피치컴 송신기를 착용했다. 투수와 포수 외에는 2루수 오윤석, 유격수 김상수, 중견수 배정대 등 센터라인 야수들이 피치컴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모두가 김경문 감독, KT와 같은 의견과 생각은 아니다. 선수들이 피치컴 실물을 본 게 16일이 처음이었고 사용법을 익힐 시간도 거의 없었다. 선수들이 설명을 따로 들어도 당장 활용법은 익숙치 않을 수밖에 없다. 또한 아직 피치컴을 착용하는 선수와 송수신기의 유무 등 기본적인 내용 숙지도 아직 혼란스럽다. 미국에서도 피치컴 불량 이슈로 경기가 중단되고 피치컴 수신기를 교체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1976년생으로 리그에서 이범호(43) KIA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젊은 이승엽(48) 두산 감독은 당장 피치컴 활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승엽 감독은 “저는 선호하지 않는다. 지금이 시즌 초반도 아니고, 약 50경기 정도 남은 상황에서 한 경기 한 경기가 전쟁 같이 중요한 시기다. 그것을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또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피치컴 때문에) 본인의 모습을 찾자 못한다면 정말 큰 손실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두산은 선발진이 궤멸된 상황에서 48승43패2무로 치열한 상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당장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변수 이상의 악재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도입 자체는 찬성이다. 이 감독은 “물론 투수들이 원한다면 당연히 사용하게 해주겠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은 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나고 내년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적응이 관건이다. 당장 올해부터 쓰다가 허둥지둥하고 사인 미스가 나면 안된다. 확실한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김태형 롯데 감독 역시 당장 피치컴 활용에 대해 “일단 불펜에서 연습할 때 한 번 써봐야 할 것 같다. 선호하는 투수가 있으면 쓸 것이다”라면서도 “하지만 당장 경기에서 피치컴을 쓰게 되면 혼동이 올 것 같다. 피치컴을 쓴다고 시간이 줄지는 모르겠다”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투수와 포수 모두 송신기를 착용할 수 있지만 사인을 바꾸고 교환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다는 것.
피치컴 활용에 대한 어색함은 있겠지만 편리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순위싸움이 점입가경으로 이어지고 있는 후반기, 투수와 포수들 루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요소에 대한 거부감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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