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선긋는 교실, 모두가 무기력해졌다[초등교사의 죽음, 그 후 1년]
지난 12일 오후 강원 지역 초등학교 교사 4명이 퇴근 후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6년차인 동년배 교사들이다. 이들에게 지난해 7월 발생한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나에게 벌어질 수도 있었던 일’이다.
“이 사건으로 선생님들이 다 같이 분노하고 똘똘 뭉친 이유를 생각해보면요. 기사 하나하나를 보면서 ‘나도 언젠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겠구나’ 이런 걱정을 항상 하고는 있지만 다 같이 공감하지 못했거든요. 그 사건으로 ‘우리는 모두 운이 좋아서 생존한 거구나’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모임에 참석한 20대 교사가 말했다.
18일은 교사들의 분노를 촉발한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순직 1주기다. 지난 1년 사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제도 보완은 하나둘 이뤄졌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고, 그다음 달 교권보호 5법을 개정했다. 같은 해 9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도 제정하며 정당한 교육활동 범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학교별 학칙도 개정했다.
현장 교사들이 제도 변화를 체감하는 속도는 더디다. 기자가 인터뷰한 초등학교 교사 11명은 1년 전에 비해 학교 현장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무기력하다고 했다. 교사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 불감에 비례해 교실은 활력을 잃어가는 듯했다.
교사와 학생이 선을 긋는 사이 공교육 역할이 약해진다. 교육이 풀어야 할 문제를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일이 많아졌다. 의지를 가지고 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했다가 민원이 접수될까봐, 다른 학급 원성을 들을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현장에서 무기력을 느낀다고 교사들은 말했다.
학교 안 모두가 선을 긋는다
강원 지역 초등학교 6학년 담임 교사인 박모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 수업을 해볼까 하다가도 망설여진다. ‘아이들이 화상 입지 않을까, 그러면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저도 많이 하고 싶거든요. ‘이거 하면 민원 받지 않을까’ 이런 게 은근히 있어요. ‘애들이 좋아하고 애들한테 도움 되지 않을까’ 이런 활동을 생각하기보다 ‘(학부모에게) 무슨 얘기를 듣지 않을까’부터 걱정하는 거죠.”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은 서초구 초등교사 죽음의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지금도 교사들은 ‘소비자’ 정체성을 앞세운 일부 학부모의 민원 제기를 두려워한다. 학부모에게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 수업이든, 생활지도든 ‘최소한’ ‘할 것만’ 하는 식으로 대응하려 한다.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감은 “선생님들이 어느 정도 허들을 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안다”고 했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에선 여름마다 하던 물총놀이를 그만뒀다. ‘아이가 다쳤다’는 등 민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체육 수업도 소극적으로 변한다. 농구를 가르칠 때 크고 딱딱한 농구공 대신 스펀지 공을 사용하는 식이다. 경남 지역 한 초등학교 체육 전담 교사는 “아이들한테 공 주고 ‘피구 하고 싶으면 피구 해라’ 하고 심판만 보는 선생님도 있다”며 “그 선생님이 ‘이렇게 애들이 좋아하는데 뭐하러 애써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리스크를 짊어지려고 했나 고민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현장 체험학습 또한 되도록 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 체험학습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의 법적 책임을 교사가 지게 된 뒤 학교와 교사는 체험학습에 소극적으로 됐다. 2022년 강원도의 한 초등학생이 체험학습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인솔 교사 2명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사건의 영향이 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올해 교외 체험학습을 일절 진행하지 않는다. 일부 학년 학부모들이 ‘체험학습을 진행해달라’는 의견을 모아 교감에게 전달했지만 담임 교사들이 완강히 거부했다. 이 학교 교감은 “선생님들이 ‘버스 대절은 하고 싶지 않고 대신 걸어갈 만한 곳에서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부담을 느끼면 못한다”고 말했다.
교사들끼리도 눈치를 본다. 아이들을 위해 야외 수업을 하고 싶어도 다른 반 선생님이 그 반 학부모에게 시달릴까 조심스럽다. 서울 서대문구 한 초등학교 교감은 “어떤 선생님이 박물관 프로그램을 가려고 했는데 ‘너희 반만 가면 우린 뭐가 되냐’며 눈총을 주더라”라고 전했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 교사도 “교과서 수업 외에 다른 활동은 하지 말자는 분위기”라며 “열정 넘치게 하려면 민폐가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에너지 넘치던 교사들도 주변 눈치를 보고 의지를 잃곤 한다.
학부모와의 소통은 줄어들고 있다. 이전에는 학기마다 상담주간을 정해 학부모와 의무적으로 상담했다면 올해부터 원하는 학부모만 상담을 신청하는 ‘수시 상담’으로 바뀐 학교들이 많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사실상 ‘상담 자제’ ‘상담 무용론’”이라며 “(교사들 사이에) 상담이 오히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를 격의 없이 만들어 민원을 부른다거나 학부모와는 멀수록 괜찮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제도는 만능해결사?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활동 보호 후속 조치에는 민원대응팀 구성·운영,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 교육지원청으로의 교권보호위원회 이관, 교권침해 직통번호 1395 개통 등이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변화를 하는데 아직도 시간이 부족하고 또 홍보도 약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제도 개선’에 대한 교사들의 낮은 체감도는 단순히 ‘홍보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새 제도만으로 구조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원 대응은 지원 정도나 관리자 재량에 따라 지역별·학교별 편차가 크다.
교사들은 제도가 재정 지원에 기반한 시스템이 아니라 관리자 개인 역량에 기대 운영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지난 5월23일 낸 ‘교육활동 보호 후속 조치 현황’ 자료를 보면 17개 시·도교육청 관내 학교에서 민원대응팀을 구성했다는 곳은 1만3952곳으로 98.9%에 달한다. 반면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과 좋은교사운동이 16일까지 취합한 시·도교육청별 민원 대응 여건 조성 현황을 보면, 17개 시·도교육청 중 11곳이 학교 민원대응팀 조직과 운영을 위해 별도로 편성한 예산과 인력이 ‘없다’고 답했다. 학교의 누군가는 기존 예산으로 민원대응 추가 업무를 맡아야 했던 상황으로 보인다. 학교의 99%가 민원대응팀을 구성했다지만 현장의 체감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일원화된 창구를 만들겠다고 하면 그 창구를 맡을 사람도 필요하다. 인적 보강이 이뤄지지 않으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에서 학교에 목적사업비로 내려주기도 하지만 총액 개념인 ‘기본운영비’를 주기도 한다”며 “학교에서 기본운영비 내에서 자율적으로 편성해 쓰는 만큼 민원 대응 예산도 기본운영비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교사는 여전히 학부모 민원을 직접 받는다. 경남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급 교체를 요구하거나 생활지도에 불만을 갖는 민원은 여전히 담임 선생님에게 바로 들어온다”며 “교장·교감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이전처럼 ‘같이 방법을 찾자’라고만 한다. (기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초등학교 교사도 “민원은 교장·교감이나 행정실장이 총괄대응한다고 말은 돼 있는데 똑같이 담임에게 바로 온다”며 “담임이 ‘잘못된 민원이다’는 판단이 들면 학년부장이나 교무실로 사후적으로 조치된다”고 했다.
담임 교사와 학생이 한 교실에서 장시간 생활하는 초등학교 특성상 교사가 학부모의 모든 연락을 피할 순 없다. 교사들도 학부모와의 소통을 전면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학급 운영에 대한 불만이나 교사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등 개별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민원에 대한 처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교육부는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의 시행 효과를 강조한다. 교원이 아동학대로 고소·고발된 경우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을 조사·수사기관에 제출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385건 중 281건에 대해 교육청이 정당한 생활지도로 의견을 제출했고, 그 중 수사종결된 사건의 86.3%가 불기소 또는 불입건 됐다고 밝혔다.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 입증에 도움을 준다고 교육부는 여긴다.
교사들은 제도 효과에 공감하면서도 역시 한계가 있다고 봤다. 교육감이 의견을 제출하기 전에 교사가 스스로 소명할 수밖에 없고, 아동학대 혐의를 벗기 전까지 스트레스나 정서적 타격, 직업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법이 스며든 교실
생활지도, 학교폭력 등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이 수사기관으로 향해 사건화하는 사례도 많다. 협의와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소송 당사자들의 시시비비만 가린다. 교사들은 ‘정서적 아동학대’ 혐의로 걸릴까 몸을 사린다. ‘학생 기분상해죄’라는 말로 자조할 정도다. 소송전은 학급 교체 등을 요구하는 민원으로 이어진다.
교사들은 교육이 설 자리에 사법이 들어서는 현상이 지속되는 추세를 우려했다. 12년 차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선생님들은 이 아이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으로 대하는데 여기에 사법의 논리가 들어오니까 숨이 막힌다”고 했다. 10년 차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스마트 워치로 녹음할까 신경 쓰인다. 그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서 검열하게 된다”고 했다. 6년 차 교사는 “(학교폭력을 제외하면) 아이들끼리 싸우고 체육시간에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가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이런 걸 해결하는 과정도 교육의 한 부분인데 너무 예민해져 있다”고 했다.
교실 안에 소송이 만연해질수록 교육의 빈 자리를 법과 제도가 채운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제정했다. 고시를 보면, 교원은 생활지도 차원으로 학생에게 조언, 상담, 주의, 훈육, 훈계, 보상을 할 수 있다.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문제를 인식하거나 학생 또는 보호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학생 또는 보호자에게 조언할 수 있다” 같이 원론적인 내용과 조언이나 훈육의 정의가 규정 곳곳에 담겼다.
법조계에선 세세한 법 조항이 법적 쟁점으로 소모되며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를 보호하려 만든 규정이 오히려 소송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세한 매뉴얼은 오히려 교사의 교육활동을 얽매기도 한다. 강원 지역의 초등학교 교사는 “문제행동을 일으킨 학생을 분리할 때 학부모가 ‘매뉴얼에 이렇게 (절차가) 나와 있는데 왜 바로 교장한테 연락했냐, 교과서 요약 등의 과제는 부여했냐’ 이런 식으로 따지면 사실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 공교육
서초구 초등교사의 순직은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의 3주체 모두에게 숙제를 남겼다. 교사들도 일부 악성 민원으로 움츠러든 교실을 우려한다. “저는 애들을 잘 가르치고 좀 더 좋은 길로 가게끔 하려고 서 있는 사람인데 ‘아동학대’가 우려돼 스스로 옭아매다 보니 아이들이 더 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을 때 무기력함을 많이 느껴요.”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 교사가 말했다.
교사와 학부모를 중재해야 하는 관리자인 교감·교장은 생동감이 사라진 교실을 보면 고민이 깊어진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선생님들이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부모를 의식하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도 열정이 많이 약화되고 있다”며 “학교 영향력은 떨어지고 교사와 학부모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데 사교육은 학부모들과의 밀착도가 커지는 걸 보고 있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학부모도 난처한 건 마찬가지다. 일부의 그릇된 행동이 부각되며 다수가 조심스러워졌다. 경기 안양시에서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A씨는 담임 교사에게 연락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묻는다. A씨는 “그 사건 이후로 우리 아이들도 혹시나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진 않을까 싶어서 ‘선생님은 어떻게 말을 하셔?’라고 물어본다”며 “선생님이 이런 성향을 갖고 계시는구나 파악하고 말을 가려서 하려고 한다”고 했다.
교사들은 교사와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사들은 단순히 교육 서비스 제공자가 아닌 교육 전문가로 교사를 인정해주길 바랬다. 부모님들이 소비자가 아닌 교육 주체인 부모로 학교의 교육활동에 함께 하길 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교사가 학부모에게 이 아이가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고 직접 말을 못 한다. ‘문제아 취급한다’는 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교사를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모든 게 틀어진다. 결국 모든 첫 단추는 학교에 대한 신뢰”라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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