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신청 않는 ‘상병수당’…예산 삭감에 본사업 연기까지

손지민 기자 2024. 7. 1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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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쉬고 수당’ 공약, 국정과제로
본사업 시행 2025→2027년 연기
시범사업 예산도 58% 삭감 예고
OECD 회원국 중 한국·미국만 없어
윤석열 정부는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정과제에도 포함했다. 그러면서 상병수당을 2025년 전면 도입하겠다고 했다가, 올해 2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이 시기를 2년 뒤인 2027년으로 슬그머니 미뤘다.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안양에 사는 사회복지사 박소윤(54)씨는 지난 2월 길 위의 살얼음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내디뎠다가 넘어져 다리가 골절됐다. 수술하고 최소 6주는 다친 다리 쪽으로 땅에 디뎌선 안 된단 진단을 받은 박씨는 출근할 수 없었다. 주말에 하던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잘렸다. 회사에선 무급 병가만 된다고 했다. 260여만원인 한달 급여가 두달치는 끊긴데다, 병원비 800만원까지 감당해야 했던 박씨는 생계가 막막했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20대 두 자녀까지 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게 있다는데 한번 신청해봐.” 주변 동료의 추천으로 각종 서류를 준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안양지사를 찾았다. 동료가 알려준 제도는 현재 일부에서 시범사업 중인 ‘상병수당’. 박씨는 부상으로 일하지 못한 기간(60일)을 인정받아 287만원을 받았다. ‘단비’였다. “이게(상병수당) 있어서 빚이 덜 생긴 거죠. 저처럼 병가가 무급이고, 급여도 작은 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 제도는 시범사업이 아니라 본사업으로 쭉 갔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조속히 도입하겠다던 윤석열 정부, 본사업 미뤄

상병수당은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부상으로 일하지 못할 때 쉬면서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단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2022년 7월 처음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 중 상병수당이 제도화돼 있지 않은 국가는 한국과 미국(일부 주에서는 도입)뿐이다. ‘아프면 쉴 권리’는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과 국제노동기구(ILO)의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협약’의 권고사항이다.

문제는 상병수당 본사업의 시행이 늦어지고 있단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정과제에도 포함했다. 그러면서 상병수당을 2025년 전면 도입하겠다고 했다가, 올해 2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이 시기를 2년 뒤인 2027년으로 슬그머니 미뤘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에서 본사업 실시는 어려워진 셈이다.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상병수당에 대한 논의도 시들해졌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상병수당 제도화) 동력이 거의 다 죽어버렸다”며 “정치적으로 아무도 상병수당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상병수당 제도의 전면 이행이 연기된 이유에 대해 “현재와 같은 정액 방식(최저임금의 60%) 급여 외에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정률 방식(종전 소득의 일정 비율) 등에 대해서도 시범사업을 시도하는 등 본사업 도입에 앞서 다양한 시범사업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16일 복지부에 따르면,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현재 1, 2단계를 거쳐 7월1일부터 3단계 사업에 들어갔다. 3단계 시범사업 지역(충북 충주시, 충남 홍성군, 전북 전주시, 강원 원주시)에서 소득 하위 50% 이하(건강보험료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이면서 건강·고용·산재보험 관련 기준을 충족한 15~64살 직장인 또는 올해 기준 월 매출 206만원 이상인 자영업자라면 하루 최저임금의 60%(4만7560원)를 상병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최대 보장일수는 150일이다. 1, 2단계 사업도 계속된다. 1단계 사업은 대상자의 소득 기준이 없다. 1~3단계를 합쳐 모두 14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8431명(1만3252건)에게 평균 18.7일치 상병수당 86만3332원이 지급됐다.

다양한 시범사업이 필요하다면서도 복지부는 내년 상병수당 시범사업 관련 예산을 절반 이상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2023회계연도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을 올해 146억500만원에서 내년 61억4500만원으로 57.9% 삭감하겠다고 했다. 자율평가를 거친 결과, 2023년도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 집행률이 낮아 ‘미흡’ 판정을 받은 데 따른 것이다. 복지부는 2021~2023년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의 실제 집행률이 33.2%라고 집계했다.

집행률 저조엔 다양한 배경이 있다. 먼저 65살 이상은 제외되고, 2차 시범사업엔 1차에 없었던 소득 기준이 생겼다. 양영실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대상과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이 제도가 필요한 노동자에겐 정작 진입장벽이 높아 예산 집행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상병수당 시범사업 참여자들도 진입장벽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상병수당을 받은 적 있는 요양보호사 이정애(63)씨는 “이런 제도가 있나 싶어 정말 고마웠다”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도 신청해보라고 추천했지만 65살이 넘어 안 된다더라. 이런 부분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 신청 방법이 복잡하고 어려워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박소윤씨는 “아들이 도와줘서 했지만, 신청 과정을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만큼 힘들었다”며 “절차가 간소화되고, 좀 더 정확한 정보와 안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민 10명 중 8명, 상병수당 모른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 2022년 7월4일 서울 종로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관련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유급 병가가 보장된 일터가 드문 한국은 ‘아프면 쉴 권리’를 공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상병수당의 전면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병가’는 법정 휴가가 아니어서 사업자와 노동자 간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을 통해 정한다. 이 때문에 유급 병가를 법제화하고 동시에 프리랜서 등 유급휴가를 쓸 수 없는 사람은 공적으로 운영하는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한겨레가 입수한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준)의 설문조사(전국 15살 이상 1천명 대상)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2%가 ‘아파도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업장에 병가제도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50.1%로 절반에 불과했고, 유급 병가가 마련돼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28.3%였다. 아프면 쉴 수 있는 ‘병가’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높았다. 병가, 의료비 지원, 유연근무제, 기타 가운데 아플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원 요소를 순서대로 꼽아달라고 하자, 1순위에 ‘병가’를 선택한 응답자가 62.1%에 달했다.

유급 병가가 보장된 일터가 적은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상병수당이다. 그러나 상병수당에 대한 인식은 한참 부족하다. 응답자의 79.3%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에 시범사업을 들어본 적 있어도 내용을 잘 모른다는 응답(16.3%)까지 합하면 비율이 95.6%에 이른다.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0.5%에 그쳤다.

재원 마련 방안도 아직 미지수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1차 평가 및 본제도 운영방안’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다양한 모형에 대해 재정추계를 실시한 결과, 1년에 최소 1022억원에서 최대 1조3365억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직 국민에게 보험료를 걷어 사회보험으로 제도를 설계할지, 세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할지도 정해진 바가 없다.

전문가들은 상병수당을 조속히 제도화하고, 많은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나백주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생활고로 세 모녀가 목숨을 끊은 사건)도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다쳐 수입이 끊기면서 비극이 시작됐다”며 “나이·소득 제한을 완화해 보편성을 확보하고, 급여도 종전 소득의 3분의 2까지 올려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방식도 사회보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병수당이 나오기 전 활용할 수 있도록 3~5일의 유급 병가를 의무화하고, 아파서 병가를 썼단 이유로 해고되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희정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장은 “상병수당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아니다. 일을 하던 사람이 아파도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근로를 이어갈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며 “우리나라엔 아파서 병가를 내는 근로자에 대해 성실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전통적 관념이 있는데, 공적으로 이런 제도를 갖추고 있다면 전반적으로 아프면 쉬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지민 김윤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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