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연정' 트롯 거장 현철…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다

윤기백 2024. 7. 17. 05: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큰 별이 졌다.

'봉선화 연정', '내 마음 별과 같이',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으로 1980~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이 1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984년 '청춘을 돌려다오', 1988년 '봉선화 연정', 1990년 '싫다 싫어' 등 잇따라 히트곡을 내며 국민 가수 반열에 올랐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히트곡 남기며 가요계 풍미
문화예술 발전 공로 대통령 표창도
유인촌 장관 등 문화계 추모 물결
대한민국가수장 진행… 18일 발인
故 현철(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리.’(‘내 마음 별과 같이’ 노랫말 中)

대한민국 가요계의 큰 별이 졌다. ‘봉선화 연정’, ‘내 마음 별과 같이’,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으로 1980~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한 가수 현철(본명 강상수)이 1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16일 가요계에 따르면 고인은 수년 전 경추 디스크 수술 이후 신경 손상 등으로 인해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아내 송애경 씨는 “본인이 가장 아끼는 노래인 ‘내 마음 별과 같이’를 아들이 귀에 가까이 들려드렸다”며 “이 노래를 들으며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9년 발매한 ‘무정한 그대’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1970년대에는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해 밴드 활동을 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10년 넘게 무명 생활을 거친 현철은 밴드를 해체하고 솔로로 전향한 뒤 1982년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 곡으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청춘을 돌려다오’, 1988년 ‘봉선화 연정’, 1990년 ‘싫다 싫어’ 등 잇따라 히트곡을 내며 국민 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중 ‘봉선화 연정’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 이상 참지 못할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물들이고’라는 절절한 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현철은 ‘봉선화 연정’으로 1989년 KBS ‘가요대상’ 대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1990년에도 ‘싫다 싫어’로 2년 연속 대상을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故 현철(사진=뉴스1)
2000년대에도 활동은 왕성했다. 2002년 ‘아미새’, ‘사랑은 눈물인가 봐’, 2010년 ‘아이 러브 유’ 등을 발표하며 주옥같은 히트곡으로 사랑받았다. 고인은 문화예술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2006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고인은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과 함께 ‘트롯 4대 천왕’으로 불렸다. 특유의 울림 있는 목소리와 서정적인 노랫말로 많은 이들의 감성을 사로잡으며 현철 만의 장르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기 함께 활동했던 가수 김흥국은 “현철의 노래는 흉내 낼 수 있으나, 현철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며 높게 평가했다. 고인의 소탈한 모습도 늘 화제였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한옥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현철은 주변 이웃, 연예계 동료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일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현철에 대해 “매우 서민적이고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주는 ‘오랜 친구’ 같은 가수였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현철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고인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를 그리워했다. 그의 노래가 여전히 불리고, 노래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현철은 건강 악화로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딴 ‘현철 가요제’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현철은 대신 손 편지를 통해 “자식 같은 후배들이 ‘현철 가요제’에서 한바탕 놀아준다니 가슴이 벅차다”며 “잊혀가는 현철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정말 행복하고 사랑한다”고 밝혀 뭉클함을 자아낸 바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빈소 앞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근조화환을 비롯해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 장철혁·탁영준 에스엠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 가수 김연자, 박구윤, 현숙, 배일호 등이 보낸 근조화환이 빼곡히 들어섰다.

현철의 장례는 대한민국가수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 40분, 장지는 분당추모공원 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송애경 씨와 슬하에 1남1녀가 있다.

윤기백 (giback@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