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세론에… 젤렌스키 항전 차질 빚나

김동현 기자 2024. 7. 1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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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戰에도 불똥
15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기자회견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AFP 연합뉴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최근 유럽연합(EU) 정상들에게 서한을 보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즉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평화(종전) 협상을 요구할 것이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놓았다”고 주장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 보도했다.

오르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와의 친분을 노골적으로 과시해 EU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이단아로 불려온 인물이다. 피격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대세론에 탄력이 붙었다는 관측 속에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서방의 단일대오가 중대 고비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뉴시스

FT에 따르면 오르반은 서한에서 “최근 푸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종합할 때 군사적 충돌이 극도로 격화될 것”이라며 협상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는 대선에서 이기면 취임식을 기다리지도 않고 즉각 ‘평화의 중재자’로 나설 계획”이라며 “그렇게 되면 (미국과 EU의)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 비중은 EU에 불리하게 조정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린 러시아와의 소통을 재개해 종전 협상을 개시해야 한다”고 했다.

오르반은 최근 잇따라 트럼프·푸틴·시진핑을 만났다. 11일에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와 만났다. 오르반은 앞서 5일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만난 뒤 사흘 뒤 베이징에서 시진핑과 회동했다. 이에 따라 오르반이 푸틴·시진핑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나눈 내용들을 트럼프에게 ‘보고’하고 EU 국가에 보낼 트럼프의 메시지를 정리해 서한 형태로 보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FT가 보도한 오르반의 서한 내용에 대해 헝가리 총리실과 트럼프 캠프는 논평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지난 9~11일 나토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과 단일대오를 다짐한 정상들의 약속이 트럼프 대세론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조각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는 그간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비판하면서 “나는 24시간 내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호언해왔다. 트럼프는 그 구체적 방법을 밝히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해주는 정황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동부 돈바스 등 영토를 러시아에 양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방안을 참모들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러한 트럼프의 계획이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일부 영토를 양도하면 전쟁을 끝내겠다’는 푸틴의 의지와도 일치한다고 짚었다. 트럼프의 안보 정책 고문인 키스 켈로그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군사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선 러시아와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트럼프 진영 입장은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의 온전한 수복과 피해 보상을 요구해온 젤렌스키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지지하며 러시아 침공 후 지속적으로 첨단 무기를 지원했다. 바이든과 젤렌스키는 지난달 미국이 향후 10년 동안 우크라이나군에 지속적인 훈련과 무기 등을 지원한다는 양자 안보 협정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현 정책은 급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비짓우크라이나는 최근 “1기 집권 시절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업적을 지우려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고 이란과 핵합의를 파기했다”며 “이러한 이력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도와 온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 역시 180도 뒤집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UPI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젤렌스키의 입장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젤렌스키는 트럼프 피습사건 이틀 뒤인 1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과거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한 트럼프를 향해 “그가 당선되면 ‘루저(패배자)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비난해온 것과 확연히 다른 어조였다. 젤렌스키는 이어 “11월 열리는 2차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러시아 대표단도 참석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앞서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1차 회의 당시 젤렌스키는 러시아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고 러시아 역시 불참했는데, 먼저 대화의사를 보낸 것이다. 젤렌스키의 입장 변화 기류가 감지되면서 완전한 영토 수복, 피해 보상, 전범 응징 등을 외쳐온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후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1차에 이어 2차 회의를 주최하는 스위스 정부도 “푸틴이 (회의 참석차) 스위스를 찾으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 집행을 예외로 둘 수 있다”고 푸틴에 길을 열어줬다. ICC는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어린이 강제 이주 혐의로 푸틴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스위스는 ICC 회원국이기 때문에 푸틴이 자국 땅에 올 경우 의무적으로 체포해야 하는데 이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뜻까지 밝힌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재선하더라도 나토 등과의 관계 때문에 조기 종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온다. 마이클 코프만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지난 4월 워싱턴포스트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도를 종용할 영향력이 없다”고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대(對)러시아 정책 고문을 지낸 피오나 힐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도 “트럼프의 ‘평화 협상’ 타결 노력엔 유럽 동맹국 대부분이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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