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고, 창단 47년 만에 청룡기 품다
전주고가 1977년 팀 창단 이후 47년 만에 첫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조선일보·스포츠조선·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에서 전주고는 정우주를 앞세운 안정된 마운드와 이한림의 3점 홈런을 비롯해 장단 15안타를 터뜨리며 1980년 이후 44년 만에 결승에 오른 마산용마고를 14대5로 눌렀다.
전주고는 1학년 선발투수 이시후가 1회 4사구 4개를 내주며 밀어내기로 선취점을 내줬다. 그러나 이어진 1사 만루에서 3학년 우완 에이스 정우주가 등판해 추가 실점 위기를 넘겼다. 정우주는 올해 고교 졸업반 투수 중 최상위라는 평가답게 최고 시속 151㎞에 이르는 빠른 볼을 앞세워 두 타자를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불을 껐다. 정우주는 2회 첫 타자를 삼진 처리한 뒤 우익수 수비를 맡았다가 다음 투수가 2사 후 3루타를 얻어맞자 다시 등판해 위기를 넘겼다. 정우주는 3회 1사 1루에서 다시 우익수로 이동했다가 14-5로 앞선 9회가 되서야 마운드에 올라왔다. 1-2학년 후배들이 호투를 이어간 데다 넉넉하게 리드를 잡아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정우주는 첫 두 타자를 가볍게 처리한 뒤 2번 이승헌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지만, 마지막 타자 김재균을 내야 땅볼로 처리하며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이번 대회 6승 중 3승을 책임졌다. 14와 3분의 2이닝을 던져 2실점(1자책). 평균자책점이 0.61 철벽 피칭을 과시했다. 결승에선 2와 3분의 2이닝 1피안타 2볼넷 4탈삼진 무실점 투구였다. 정우주는 “이마트배에선 나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졌다. 청룡기에선 내 뒤에도 누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동료들을 믿은 게 우승할 수 있었던 힘”이라며 “특히 결승에 나오지 못한 (이)호민과 내 뒤를 든든히 지켜준 수비와 우승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호민은 준결승에서 투구 수가 많아 결승에 나서지 못했다.
전주고는 폭우로 3회 도중 1시간 40분가량 중단된 상황에서도 식지 않은 뜨거운 방망이를 앞세워 2~4회 10안타로 11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일찍 끝냈다. 5번 서영준과 6번 성민수가 3이닝 동안 각각 3안타 3득점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4회초 1사 2·3루에서 전주고 4번 이한림이 왼쪽 담장 너머로 자신의 대회 두 번째 대포(3점)를 쏘아 올려 9-1을 만든 게 사실상 마산용마고 추격 의지를 꺾는 순간이었다. 정우주와 함께 배터리를 이룬 포수 이한림은 홈런(2개) 타점(10개) 1위에 오르며 대회 최우수 선수 감격까지 누렸다.
이한림은 “결승에서 홈런 1개, 타점 3개만 올리면 둘 다 상을 받을 수 있어 주변 친구들에게 욕심을 드러냈는데 운 좋게 3점 홈런을 때렸다”며 “최우수선수상은 정우주가 받을 줄 알았는데 내 이름이 불려서 너무 놀랐고,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청룡기 고교야구선수권 첫 우승을 기대했던 마산용마고는 마운드가 일찍 무너져 대량 실점을 감수해야 했다. 다만 승부가 기운 가운데에도 끝까지 투지를 불살랐다.
전주고는 청룡기 79번째 주인이 되면서 1977년 팀 창단 이후 늘 붙어다닌 ‘다크호스’ 꼬리표를 말끔히 떼어냈다. 전주고는 박경완, 김원형, 최형우(KIA) 등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급 선수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전국대회 우승(전국체전 제외)은 1985년 황금사자기가 유일했다. 열악한 야구 인프라 때문에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1년을 전후로 해체 위기까지 몰렸다. 전국적인 동문 후원회를 중심으로 기숙사 설립과 유망주 영입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야구부가 되살아났다. 2019년 협회장기와 2022년 대통령배 준우승 성과를 이룬 전주고는 지난해 8월 신일고 2학년 투수 정우주를 데려오며 대망의 꿈을 품었다. 전주고는 지난 4월 이마트배 협회장기 결승에서 올해 최강 팀 중 하나인 덕수고에 5대8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청룡기에서 더욱 탄탄해진 전력을 보여주며 정상에 올랐다.
주창훈 감독은 “포지션별로 좋은 선수들을 어렵게 모아 올해 청룡기에 전력이 100%에 이르도록 다듬었다”며 “겨울 동안 혹독한 훈련을 선수들이 잘 따라와줬다. 누구 한 명이 아니라 8명의 3학년을 비롯한 선수들 모두가 함께 이뤄낸 우승”이라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전주고가 모교 출신에게만 지휘봉을 맡기던 순혈주의를 깨고 2018년 사령탑에 앉힌 광주동성고 출신 주창훈 감독은 선수들과 허물 없이 소통하는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뭉치게 만들었다. 그가 감독상을 받자 선수들이 “주창훈, 주창훈”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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