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방 안의 코끼리’ 된 고령자 운전, 면허 반납만이 능사인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2024. 7.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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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운전자 500만명 가까워졌지만 면허 반납에만 치중
일정 나이 이상 운전 제한하면 생계 위협하고 경제에도 악영향
실제 운전 능력 종합 평가한 ‘조건부 면허’로 푸는 게 합리적
그래픽=양인성

올해 하반기 시작인 7월 첫날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68세 운전자가 모는 차량이 역주행한 끝에 16명이 죽거나 다쳤다. 운전자는 사고 원인을 급발진이라고 주장했지만, 목격자 진술과 블랙박스 등 여러 증거로 인해 운전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그러자 화살이 운전자의 나이로 향했다.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금지 또는 제한하자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필자는 일련의 사태가 ‘방 안의 코끼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미 2000년부터 노년층 비율이 7%를 넘김으로써 고령화 시대에 진입했고, 내년으로 예상되는 초고령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노령 운전자를 둘러싼 논란은 진작부터 있었다. 오랫동안 별다른 논의가 없다가 대형 사고 후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방 안의 코끼리를 무시하다가 이 코끼리에 밟힌 사람이 여럿 죽고 나서야 난리가 나는 형국을 연상케 한다.

노년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많이 내는 게 맞을까?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신체 및 인지 기능이 감소해 판단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응 시간이 느려지고 그에 따라 운전 능력이 감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픽=양인성

국회입법조사처가 연령대별로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는 비율을 조사했더니, 20세 이하에서 면허 소지자 1만명당 교통사고 건수 및 사망자 수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30~40대에서는 사고를 내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비율이 낮아지다가, 50대부터 다시 사고 위험이 증가했다. 특히 65세 이상에서는 면허 소지자 1만명당 사망 사고를 내는 비율이 명확히 커지는 것으로 나왔다. 노화에 따른 신체 및 인지 기능의 변화가 운전자의 사고 발생률을 높이고, 특히 인명 피해 정도가 높은 사고를 낼 가능성을 키운다는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이슈의 핵심은 노년층의 운전이 위험한지를 밝혀내는 것보다 초고령화 시대에 맞게 면허 관련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정책은 노년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하도록 유도하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진 반납 시 교통비를 지원한다. 그 결과 2021년에는 6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반납 건수가 8만3997건에 달하기도 했다.

문제는 매년 100만명 전후의 속도로 베이비 붐 세대가 ‘65세’라는 나이의 지점을 빠르게 통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노년 운전자 숫자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노년 운전면허 소지자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10.2%인데 이는 노년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 4.6%의 2배를 넘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내년에는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98만명이 면허를 소지할 것이라고 한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가 1316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 운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므로 특정 나이가 됐다는 이유로만 면허를 반납하게 하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노년층에서는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률적으로 면허를 반납하게 하면 이들의 생계를 위협할 뿐 아니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저출생을 겪는 한국에서 사회가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노년층의 사회 참여가 필수적인데, 면허 반납은 반대로 가는 정책이다. 특히 대중교통이 열악한 시골에 거주하는 노년층에게는 생존과 직결될 수 있다. 특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면허를 반납 또는 박탈한다는 발상 자체가 나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에이지즘(ageism)이자 행정편의주의다.

숫자 나이보다 더 중요한 건 생물학적인 노화의 축적 정도와 이에 따른 실제적인 운전 역량, 그리고 환경적 요인의 함수다. 먼저 사람의 운전 관련 역량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이런 개념을 받아들인 해외의 노년 운전 면허 정책은 실질적인 운전 능력 평가와 조건부 면허 제도를 연계하는 추세를 보인다.

실질 운전 능력 평가는 평가 대상 운전자가 실제로 차량을 운전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신체·인지 기능 저하를 자각한 노년 운전자들이 보이는 보상 행동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어떻게 서행하는지, 주변을 주시하는 정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등을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신체·인지 기능 검사 중심의 운전 적격성 평가는 실제 주행에서는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잡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조건부 면허 제도는 실질 운전 능력 평가 결과에 따라 시간, 지역, 속도, 보조 장치 등 특정 조건을 전제로 제한적인 면허를 발급하는 것이다. 신체 능력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조건 면허를 반납해야 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다.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가 제작되듯이 노화에 따른 신체 및 인지 기능을 보완하는 자동차와 도로 시스템이 발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안전한 운전이 가능할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모든 신차에 비상제동과 후진보조장치 등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장착을 필수화했고, 일본은 얼마 전 자동 변속기 차량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운전은 차량 환경, 도로 환경, 운전자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것이니 외부적 요인은 도외시하고 운전자만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존재했던 문제를 외면하다 사건이 생기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 갑작스러운 반동의 모멘텀이 작동해 급조된 해결책을 내놨다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 주의해야 하는 의약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력이 지지부진하다가 특정 약제의 사용에 의한 부작용이 의사 한 명의 형사 처벌을 불러오면, 별안간 해당 약제는 사용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되는 식이다.

노년의 운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나이듦을 가파르게 쫓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고령화를 둘러싸고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현상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문제가 벌어지기 전까지 ‘코끼리’를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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