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2] 파괴자가 많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총장은 몸집이 위압적이고 혈색이 좋은, 키 크고 풍채 좋은 사람이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스토너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라틴어를 번역하면서 고개를 들어 총장과 그 일행을 향해 번역하던 시의 다음 구절을 부드럽게 읊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이 못된 갈리아 놈들!” 그러고는 여전히 번역을 이어 나가면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총장 일행은 놀라서 헉 하고 숨을 삼키며 휘청휘청 뒤로 물러나더니 몸을 돌려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중에서
읽고 나서 감동이 클 때 널리 알리고 싶은 소설이 있고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후자에 속한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돕던 스토너는 지역 추천으로 농과대학에 들어갔지만 교양 문학 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꾼다. 스토너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러나 스토너의 인생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는 행복한 가정을 주지 않았다.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만났지만 아내와 자식을 떠나지도 못했다. 종신 교수가 되었으나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고 출셋길이 막혔고 조기 퇴직의 압박에 시달렸다.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데서 보람을 찾았지만 이번엔 병마가 그를 무너뜨린다. 유행가 가사처럼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묻고 싶어지는 인생이다. 그러나 작가는 “슬프고 불행해 보이지만 스토너의 삶은 훌륭한 것이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당대표 후보자 간 경쟁이 치열하다. 정치인들은 남의 과거는 폭로하고 자기 죄는 파묻는다. 청문회 하자, 탄핵하자, 여론몰이하며 ‘너는 틀렸고 나만 옳다’고 존재를 과시한다. 진실과 정의를 크게 외칠수록 그들이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저러는 걸까, 궁금해진다. 정치인 개인에 대한 신성불가침 같은 지지, 열혈 추종자들 간의 싸움도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다.
남의 허물을 크게 들추고 더 많이 빼앗고 더 잘 짓밟고 올라서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도 스토너처럼 남 탓하지 않고 엄살 부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몫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진정한 영웅들께 무덥고 소란한 여름, 스토너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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