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의사 키워낼 지방대 병원이 망해 간다

이진영 논설위원 2024. 7. 1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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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최대 규모 충남대병원 도산 위기
정부 지원 없는 사립대 병원은 더 위험
의대 가도 수련병원 없으면 실습 차질
교육 파행 방치 시 의대 양극화 심해질 것
이진영 논설위원

충청권 최대 규모인 충남대병원이 도산 위기를 맞아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2020년 개원한 세종 분원의 누적 손실이 막대하고 전공의 이탈 후 매달 100억 원씩 적자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직원 월급과 약품 대금 지급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한다. 의대 증원 발표 후 전국 대학병원들의 줄도산 우려가 있었지만 정부가 지원하는 지역 거점병원부터 도산 위기에 내몰릴 줄은 몰랐다.

충남대병원과 세종 분원이 잘못되면 하루 5500명 규모인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게 된다. 충남대 의대생들의 실습 교육 파행은 장기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다. 충남대 의대 정원은 110명에서 올해 입시에선 158명, 내년부터는 200명으로 늘어난다. 수련시설도, 교수진도 대대적으로 늘려야 하건만 증원된 학생들이 들어오기도 전에 수련병원은 문 닫을 처지이고 교수들은 수도권 대학과 개원가로 빠져나가고 있다.

다른 지방 국립대 의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부 지원을 못 받는 사립대들은 훨씬 열악하다. 대학병원 지원금은 기대하기 어렵고 15년째 동결된 등록금 수입마저 급감하고 있어 의대 교육에 투자할 돈이 없다. 의대생들은 본과생들까지 서울 지역 의대로, 비의대생들은 의대 가려고 휴학하고 N수 대열에 합류한 탓이다. 이대로 가면 수련병원 없이 개교했다가 평가인증에서 탈락해 2018년 폐교된 서남대 의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지방의 필수 의료를 책임질 지역 의사를 양성한다던 의도와는 달리 지방 의대 증원 발표 후 서울과 지방 의대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급박한데도 정부는 6월 내놓겠다던 의대 지원 대책을 9월로 미룬 채 돈 안 드는 엉뚱한 대책들만 쏟아내고 있다. 교수 자원 부족에 대비해 개원의 경력 4년이면 연구 교육 실적 없이도 교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지 않은 개원의에게도 인턴 레지던트 끝나고 전임의 과정 2년을 마쳐야 자격이 주어지는 교수 자리 지원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수업 거부 중인 학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F학점도 유급시키지 말라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한국은 대부분의 선진국과 달리 의대 졸업 후 면허만 따면 별도 수련 없이도 어떤 진료과목이든 독립적 진료가 가능하다. 그만큼 대학 교육이 중요한데 오히려 학사 기준을 완화하겠다 하니 학생들도, 잠재적 환자들도 반발하는 것이다.

그나마 자격 미달 의사 배출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의대 평가인증 제도다. 정부는 여기에 손을 대겠다고 한다. 20세기 초 미국이 평가 결과를 토대로 131개 의대 중 50개를 폐교시킨 후 의대 평가인증 의무화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제대로 못 배운 의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흉기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도 1980, 90년대 정부가 지역마다 공항 지어주듯 의대 20여 개를 무더기로 신설하자 의학계가 2004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을 설립해 자율적으로 평가인증을 시작했고, 2016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 의대 평가인증기관으로 인정받았으며, 2017년부터는 인증을 못 받은 의대 졸업생들은 면허시험을 볼 수 없도록 법도 개정됐다.

정부가 인증기관 지정 권한을 이용해 국제 기준에도 맞는 의대 평가인증 기준 변경을 압박하는 이유는 증원된 대학들이 평가인증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는 올 12월 증원에 따른 교육계획서를 재정계획과 함께 제출해 평가받아야 한다. 대학들이 자체 검증한 결과 30개 의대 모두 인증평가에서 탈락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부터 개별 의대 교육 여건에 맞춰 증원 인원을 조정했으면 될 일이다. 배정 기준도, 회의록도 없이 ‘깜깜이 배정’을 해놓고 인증평가 통과가 어려워지자 기준을 낮추려 한다면 지난 정부 시절 집값이 잡히지 않아 부동산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공무원들과 뭐가 다른가.

의대 증원으로 교육 파행을 겪고 있는 지방 의대를 보면 조민 씨가 생각난다. 부산대 의전원 4년 과정을 두 번 유급 끝에 6년 만에 졸업하고 면허시험도 통과했지만 입학 당시 제출한 서류가 허위로 판명 나 면허가 취소됐다. 면허 취소 전 조 씨가 인턴 과정을 시작하자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우리 가족이 아플 때 조민을 마주치지 않을까 너무너무 두렵다”며 무자격자 진료 배제를 주장했다. 의대 입시에 정당하게 합격하고도 조 씨가 다닐 때보다 헐거워진 평가인증을 받은 의대에서, 낙제해도 봐주는 학사 관리를 받은 의사를 만나면 어떨 것 같은가.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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