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맨쇼보다 다양성”… 잡스 사후 애플 가치 10배 키운 ‘운영의 달인’[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몽상가 잡스의 꿈을 13년간 현실로
쿡은 애플에서 생산 운영 업무를 담당했다. 생산시설을 닫고 계약업체들을 찾아서 위탁생산을 시도해 제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갔다. 애플이 설계와 디자인을 맡고 대만 폭스콘이 생산을 담당하는 전설적인 협력 관계의 서막을 쿡이 연 것이다. ‘운영의 달인’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2005년 애플의 모든 생산 운영을 총괄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 앉게 된다.
2011년 8월 오랜 시간 췌장암으로 고생하던 잡스의 병세가 나빠진다. 그는 쿡을 다음 CEO로 지명하고 같은 해 10월 생을 마친다. 2011년까지 COO를 맡으며 잡스가 위독할 때마다 임시 CEO를 맡았던 쿡이 CEO가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다만, 애플의 혁신적인 성향을 사랑하던 많은 애플의 팬은 쿡이 애플을 이끌 능력이 있는지 의심했다. 잡스에게 있던 미래를 보는 통찰력과 카리스마, 맹렬한 추진력이 없어 단순히 현상 유지만 할 뿐이라는 우려가 컸다. 그러나 잡스의 혁신적 능력을 대체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잡스를 대체하지 않고 그의 몽상가적인 청사진들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 CEO가 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쿡은 0에서 1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1에서 100을 만들 수 있는 실행형 CEO로서는 최적의 인물이었다.
쿡을 CEO로 만든 역량은 생산 운영 분야의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CEO로서의 성공은 애플 제품들의 생태계를 완성하고 애플의 경쟁력을 증가시킨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애플을 현상 유지한 데 그치지 않고 잡스의 철학을 능동적으로 적용한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아 ‘애플 생태계’를 진화시켰다.
제품들 간 보완성 높여 생태계 완성
애플 제품끼리의 보완성을 처음 구상한 것은 잡스이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면서 제품 각각의 보완성을 높여 간 것은 쿡이다. 쿡이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 왕국’은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둔 애플워치와 에어팟은 각각 2015년, 2016년에 쿡이 CEO로 있을 때 탄생한 제품이다. 또한 애플의 생태계에서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해 지속적인 매출을 일으키게 해주는 애플뮤직과 아이클라우드 역시 쿡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매출적 측면에서 실패로 여겨지고 있지만 많은 혁신적 시도가 더해진 가상현실·증강현실(VR·AR) 헤드셋인 비전프로 역시 쿡의 작품이다.
잡스 생전의 애플은 잡스의 원맨쇼 무대로 여겨졌다. 많은 애플의 미래 비전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많은 혁신적 제품을 성공시켰다. 잡스의 자리를 계승한 쿡은 자신이 잡스가 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가 생각한 애플의 혁신성을 유지하는 방안은 혁신을 조직의 특성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기업혁신의 대가로 여겨지는 경제학자 조엘 슘페터는 혁신을 기존의 지식을 새롭게 조합해 만든 제품 또는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기 위해 갑자기 새로운 지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의 다양한 지식이 조합돼 생겨나는 새로운 기능에서 혁신이 나온다는 뜻이다. 쿡 역시 다양한 지식의 조합에서 생겨나는 혁신을 믿었다.
쿡의 이야기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현상을 유지하면서 큰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보수적 경영자에게 일침을 준다. CEO의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하고 리스크가 따르는 도전을 하지 않으려는 경영자들의 단기적 마인드는 기업의 성장 스토리를 중시하는 주주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기업 주식의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 조합해 혁신성 유지
CEO들이 장기적 시각을 가진 경영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CEO의 임기는 모든 주주의 평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정치권의 압력, 창업주나 대주주 등의 심기에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 성과가 좋은 CEO가 오래 일하며 주주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잘 짜인 CEO 승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쿡은 잡스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애플의 장기적 미래 플랜에 대해 시각을 같이했기 때문에 잡스의 철학을 잘 계승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반면 신임 CEO들은 전임자가 시작한 프로젝트들은 파기하고 준비되지 않은 새로운 일을 추구하려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전임자와 긴밀한 소통 속에서 0에서 1을, 1에서 100을 이루어내는 ‘비전실행형’ 협력이 빛을 발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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