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 칼국수·5000원 제육덮밥…고물가에도 ‘살 맛’ 나네
온라인 소문에 젊은층 발길
“고단한 일상에 단비 같아”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돈 16일 오후,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뜨거운 칼국수를 즐기려는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서울 경동시장 인근에 자리한 한 칼국숫집. 손칼국수 한 그릇에 4000원을 받았다.
진한 멸치 육수에 직접 뽑아낸 굵직한 면발이 그릇을 가득 채웠다. 맛도 전문점에서 1만원 넘게 주고 먹던 칼국수와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손짜장면(4500원), 돌솥비빔밥·제육덮밥(5000원)도 저렴했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착한 가격’에 양도 푸짐하고 맛도 좋은 음식을 내는 식당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에도 “가격이 착한데 양도 많고 맛도 끝내준다” “어릴 때부터 믿고 찾는 고수의 맛집”이라는 등의 ‘내돈내산’ 후기들이 올라와 있는 곳들이다.
서울 일원동 먹자골목에 위치한 한 낙지집도 입소문을 탄 곳이다. 점심시간이면 인근 삼성의료원 직원들이 줄을 서는 ‘가성비 맛집’으로, 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인기 메뉴는 싱싱한 낙지를 매콤하게 볶은 뒤 돌솥에 푸짐하게 얹어주는 낙지돌솥비빔밥. 감자수제비 한 그릇과 맛깔스러운 김치에 3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가격은 1만원에 불과하다.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하던 최모씨(38)는 “혼자서도 자주 오는데 회식 장소로도 인기”라며 “양이 푸짐하고 무엇보다 맛이 최고”라고 말했다.
이곳의 또 다른 가성비 메뉴는 연포탕이다. 큼지막한 생낙지 2마리를 넣어주는데 국수사리와 죽을 더하면 5만1000원으로 4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이 식당 사장 최성균씨(30)는 “식재료 가격은 물론이고 전기료, 인건비 등이 올라 음식점을 운영하기가 솔직히 어렵다”며 “주말에는 가족 고객이 많은데 믿고 찾아주시는 단골을 위해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서울 제기동 골목을 지키고 있는 한 설렁탕집은 지방에서도 손님이 찾아오는 숨은 맛집이다. 지하철 1호선 제기역 2번 출구로 나와 옆 골목을 따라 100m쯤 들어가면 사골 가마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설농탕’ 한 그릇이 9000원이다.
평일 낮에 만난 김모씨(74)는 “구리에 사는데 일주일에 한 번 청량리시장에서 장을 본 뒤 설렁탕을 챙겨 먹는다”면서 “예나 지금이나 든든하게 건강을 챙기기에 좋다”고 말했다.
이 음식점 사장 이미애씨(55)는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단골인데 요즘은 젊은이들과 가족 손님도 많이 찾는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가격을 안 올리고 버텼는데 어쩔 수 없이 7월부터 1000원씩 올렸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외식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0%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4%)보다 높았다. 외식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것은 2021년 6월 이후 37개월째다.
또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을 보면 대표 외식 메뉴인 삼겹살 1인분(200g)은 서울을 기준으로 평균 2만원을 넘어섰다. 비빔밥은 한 그릇에 1만846원, 짜장면 7223원, 칼국수 9154원, 냉면은 1만1692원을 기록했다.
자영업자 황모씨(41)는 “식당은 팔아도 남는 게 없고 서민들은 외식을 하기가 버거운 요즘 착한 가격 음식점이 고단한 일상에 단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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