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래는 다중 바큇살로 연결된 네트워크 강대국”
선진국에 다가섰다는 자부심부터 저출생과 안보 위기 속에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까지 극과 극의 감정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미중 대립으로 인한 경제 안보적 위기 상황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어떤 전략적 비전을 가지고 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원장 김준기 교수) 소속 ‘글로벌 한국 클로스터’ 연구진들이 이런 문제 의식을 담은 정책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경제 번영을 위한 강대국 전략-산업, 문화, 안보의 융합’이라는 제목이다. 보고서의 키워드는 ‘개방성’ ‘한국 주도’ ‘민간 혁신’이다. 폐쇄적 민족주의 국가모델이 아니라 ‘개방적 네트워크 국가’의 정체성을 지향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시각에서 그 주변에 위치한 한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자리 잡은 한국의 입장에서 전략을 모색하자고 한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의 연구, 제조, 물류, 투자 생태계 건설을 강조한다.
한국의 미래에 대해 ‘다중 바큇살 생산기지론’을 제안했다. 한국을 기획·설계·연구개발(R&D)·디자인·마케팅 혁신지대로 발전시켜 수레바퀴의 중심축으로 삼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아프리카, 동유럽 등 7개 지역의 생산 거점(허브)들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까지 물류망을 통해 바큇살처럼 연결하자는 ‘7허브 플러스 4’ 구상이다. 이와 함께 ‘제조업+알파’ 전략의 하나로 한국 주도의 대중문화 플랫폼 사업을 성장시켜 한국의 문화산업을 더욱 개방적으로 세계와 연결시킬 것을 제안했다.
‘글로벌 한국 클로스터’ 장을 맡고 있는 손인주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비롯해 박훈 역사학부 교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송치웅 선임연구위원, 최창용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 다양한 분야 8명 전문가들의 난상토론과 내외부 전문가들의 리뷰를 거쳐 내놓은 정책 제안이다. 연구 책임자인 손인주 교수에게 15일 전화 인터뷰로 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왜 이런 국가전략이 필요한가.
“한국은 대내적으로는 심각한 정치와 이념의 갈등, 성장률 저하, 인구 감소, 대외적으로 미-중 첨단기술 경쟁과 공급망 위험이라는 리스크에 부딪혔다. 길게는 3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비전과 전략이 없다면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지난 20여년 빠르게 증대된 국력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개방형 네트워크 강대국’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다중바큇살 생산기지론은 과감하지만 낯선 아이디어인데 현실성이 있을까.
“국내에는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세계 혁신기업들이 진입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개방된 혁신의 공간을 구현하고, 국제적으로는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서 세계 곳곳에 거점 생산기지를 두고 물류를 기반으로 한국이 그 거점들을 연결하는 중심 공간이 되는 아이디어다. 보고서를 만들면서 기업들이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중 분쟁 등으로 국제적 지형이 변하는 가운데 기업들은 동유럽과 아프리카 등에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한국 클로스터’ 장 맡아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난상토론
‘경제 번영 위한 강대국 전략’ 내놔
“한국 미래는 다중 바큇살 생산기지
기획, 디자인, 마케팅 등 혁신 이뤄내
한국을 수레바퀴 중심축으로 만들고
세계 각 지역과 바큇살처럼 연결을”
―많은 생산기지가 해외로 나가게 되면 지역의 소멸이 더 가속화되는 것 아닌가.
“연구진들은 ‘다중 바큇살’ 생산기지 확보를 통해 지방활성화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과 토론도 많이 했다. ‘지방정부 주도의 지역 혁신 거점화' 전략 등을 통해 지방 활성화를 추동하고, 또한 고령화 시대에 은퇴자를 포함한 한국의 우수 인력을 해외 생산지대에 파견하면서도 동시에 국내 거점들과 연계하는 전략을 고민했다. 외부의 인재와 자본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또 한국의 인재와 자본이 바깥으로 나가면서 저출산 고령화시대의 한국이 더 성장하고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문화 산업도 중요한 미래 전략으로 놓은 이유는.
“문화는 이미 한국의 주요 산업이 되었기도 하고,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비티에스(BTS) 멤버들이 입대하자 전세계 아미 팬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다. 다만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면서 혁신과 도약을 하고, 정부는 지원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안보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한국으로서는 지금까지 성장의 기반이 되었던 기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미국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한국 중심으로 소다자주의의 동심원을 만드는 것도 병행하면서 한미동맹이 갑자기 흔들리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자유무역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하면서 해양안보 협의체 확대를 주도할 수 있다. 중국이 해상 교통로에 대한 공동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라는 원칙을 내세울 수 있다면 협력해 나갈 수 있다.”
―이런 제안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까.
“이런 내용을 가지고 6월 말부터 국회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국가 전략에 대한 시리즈 강연을 하고 있는데, 40~50명씩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호응도 좋다. 여야가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외교 안보 전략에서는 컨센서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를 정부와 국회에도 전달할 예정인데,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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