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소설쓰기는 내 삶의 형식”

김용출 2024. 7. 16. 20: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로 돌아온 전성태
1994년 단편소설 ‘닭몰이’로 등단해
따뜻한 시선으로 향토적 생명력 발산
만남·헤어짐 담은 5번째 소설집 펴내
“작가란 단 한 편을 남기는 과정이 아냐
인생을 살아가는 결과로서 작품 나와
질문 멈추지 않고 살아가듯 글 쓰고파”

작고한 대구 출신의 사진작가 이지누는 남해 완도의 청산도를 비롯해 길 위에서 만나는 순정한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사진작가 서원 등과 함께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사진을 주요한 콘텐츠로 담은 계간지 ‘디새집’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들 ‘디새집’ 작가들은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삶을 한국의 얼이라고 생각하면서 글과 사진을 통해서 이를 기억하고 보존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잡지는 우여곡절 끝에 폐간됐고, 서 작가는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이 작가는 나중에 한 대기업이 발행하는 잡지 ‘보보담’ 발행을 총괄하게 됐다.
향토적인 생명력을 발산해온 소설가 전성태가 다섯 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그는 “작가란 단 한 편을 남기는 과정이 아니고, 실패 같은 것을 해가며 작품을 쓰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 제공
이들과 함께 청산도를 다니기도 했던 소설가 전성태는 어느 날 이 작가가 주도하는 잡지 ‘보보담’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중앙대에서 강의 중이던 그는 10주기를 맞는 서 작가를 추억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수강생 가운데 섬에 찾아가 몇 달 동안 텐트를 쳐놓고 생활하는 학생이 있었다. 학생은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끝내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생의 모습은 마치 전망이 부재하고 답답한 현대를 대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자연스럽게 청산도의 서 작가와 텐트를 친 학생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포개졌다.
소설가 전성태는 사진작가 서원씨와 섬의 수강생 이야기를 버무려 단편소설 ‘여기는 괜찮아요’를 창작, 잡지 ‘보보담’ 2020년 여름호에 발표했다. 단편소설 ‘여기는 괜찮아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람과 인연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대학교수인 ‘나’는 팬데믹 시기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섬에서 혼자 지내는 수강생 경진의 글쓰기 과제를 첨삭한다. 어느 날 청산도에서 만났던 공무원 어르신 오동순씨로부터 기억에 없는 책을 돌려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오씨와 통화한 뒤,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청산도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던 원보 형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평생 상여 앞소리꾼으로 산 노인 이야기도. 내가 마침내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 묻자, 그들은 “아직 여그는 청청한게” “여기도 괜찮아요”라고 화답한다.

“‘상여 소리꾼 어르신 말이에요. 어떻게 되셨어요?’ ‘기억하시네요이? 양동섭 어르신 가신 지 한 7년 됐으니까. 우리 백부는 아직 살아 계시고요. 백세 넘겨 사실 양반을 어찌 이게불겄다고 그런 약속을 하셔. 그냥 우스워 죽지라. 전 선생, 내 월급 나올 때 완도에 한번 놀러 오쇼. 아직 여그는 청청한게.’ 나는 그렇겠노라고 약속했다. 경진 학생에게서 짧은 메일이 왔다. ‘여기도 괜찮아요, 교수님. 할머니 돕다가 다음 학기에 올라가려고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바람 좀 쐬게 오만원만 보내주세요. 양경숙씨한테서 받으면 갚을게요. 계좌는 수협이고요 ㅠㅠ’”(275쪽)

따뜻한 시선과 풍성한 토속어로 향토적인 생명력을 발산해온 소설가 전성태가 표제작 ‘여기는 괜찮아요’를 비롯해 최근 발표한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9년 만의 소설집으로, 그의 다섯 번째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일흔이 넘은 노인(‘상봉’), 오래전 함께했던 형을 기억으로 만나는 대학교수(‘여기는 괜찮아요’), 아버지를 보내고 오는 딸과 의붓어머니(‘숲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따라가 애도의 방식을 고민하는 중년의 딸(‘가족 버스’) 등등.

작가 전성태가 소설을 통해서 만나고 떠나보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향토적인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전 작가를 지난달 20일 전화로 만났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깡통’은 대학부설 연구소에서 한몽사전 편찬 작업을 하러 온 몽골 사람 네르귀의 이야기다. 그는 표제어 깡통을 다루다가 어린 시절 깡통에 얽힌 추억을 회고하게 된다. 그러니까 네르귀는 부모들이 돈 벌러 한국으로 가면서 할아버지와 둘만 남게 된다. 어느 날 여행자들에게서 콜라캔을 선물 받았다가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위험한 깡통을 버리러 멀리 떠나게 되는데.

―“고비의 방식”이라는 말이 인상적인 ‘깡통’은 어떻게 태어난 것인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5년 가을에서 2006년 봄까지 6개월간 몽골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9번이나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에서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쓴 것이 세 번째 소설집 ‘늑대’였다. 그때 몽골에 대해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하나를 더 쓰고 싶어서 쓰게 됐다. 특별한 모델이 있는 건 아니다. 몽골 고비 사막에 가면, 가끔 할아버지나 할머니하고만 지내는 어린 애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엄마가 돌아가 이모 집에 어린 딸들을 맡겨 놓은 집을 아이의 아빠와 함께 찾아간 적도 있었다.”

소설 ‘조용한 생활’은 고교 시절을 보낸 곳의 대학교수로 돌아온 준모의 이야기다. 어느 날, 준모는 주인집 허 노인으로부터 여순사건 희생자의 학적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학적부에 전화했다가 고교 시절 유일한 친구 양태민과 보낸 어두웠던 학창시절을 되짚게 된다.

―여순사건의 심연으로 곧 육박해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대학교 안에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119연구소’가 있는데, 운영위원을 맡아서 하나씩 배우고 있다. 제가 다닌 고교 근처에서 사건과 관련해 유해 발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선교사 기록 등도 남아 있었지만, 유해가 발굴되진 않았다. 주민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아마 유가족들이 당시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시신을 하나둘 찾아가지 않았겠느냐 라고 하더라. 지금 살고 있는 주인집 어르신이 2022년 가을 무렵 작품 속의 내용과 비슷한 것을 요청하신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자료를 찾진 못했다. 주인이 쪽지를 전했을 때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전성태는 1994년 농촌 젊은이의 모습을 해학적인 필치로 그린 단편소설 ‘닭몰이’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 ‘늑대’, ‘국경을 넘는 일’, ‘매향’,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을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가 또는 작품에 대한 비전은 어떤가.

“스물다섯에 작가가 처음 됐을 때는 결국 단 한 편의 작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 생활을 30년째 해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란 단 한 편을 남기는 과정이 아니고, 중간에 실패 같은 것을 해가며 작품을 쓰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인생을 살아가는 결과로서 한 편씩 소설이 나오는 것이지, 단 한 편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소설 쓰기가 제 삶의 형식인 것처럼, 오랫동안 질문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듯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자꾸 ‘무엇인가에 진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소설가 전성태는 삶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새벽 5시 일어나서 수업 준비를 하고,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 가서 걷고, 학교에 나가서 수업하거나 공부하고. 수업하는 것도 좋고, 지금 이 순간 이 공기 안에 있는 것도 좋다. 틈틈이 걸으며 생각하고 희구할 것이다. 아직 “못다 쓴 이야기, 꼭 쓰고 싶은 소설”을.

예전에는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활동하고 계셨고 글쓰기 친구들도 옆에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홀로 걷는 감각이 도저하다. 선생님이나 선후배 작가들이 하나둘 떠날 때마다 마치 가족이 떠나가는 듯한 통증 역시. 혼자 걷는 감각으로 글을 써 가리라. 몽골의 친구 네르귀가 할아버지를 떠나서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처럼.

“네르귀는 엔비쉬 할아버지가 있는 고비로 돌아가지 않았다. 깡통을 싸주며 네르귀를 먼 길로 떠나보낼 때, 그는 그만의 길을 떠났으리라는 게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그게 고비의 방식이라고 네르귀는 동료 연구원들에게 말했다.”(36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