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소설쓰기는 내 삶의 형식”
1994년 단편소설 ‘닭몰이’로 등단해
따뜻한 시선으로 향토적 생명력 발산
만남·헤어짐 담은 5번째 소설집 펴내
“작가란 단 한 편을 남기는 과정이 아냐
인생을 살아가는 결과로서 작품 나와
질문 멈추지 않고 살아가듯 글 쓰고파”
작고한 대구 출신의 사진작가 이지누는 남해 완도의 청산도를 비롯해 길 위에서 만나는 순정한 풍경과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사진작가 서원 등과 함께 깊이 있는 취재를 바탕으로 사진을 주요한 콘텐츠로 담은 계간지 ‘디새집’를 발간하기도 했다.
“‘상여 소리꾼 어르신 말이에요. 어떻게 되셨어요?’ ‘기억하시네요이? 양동섭 어르신 가신 지 한 7년 됐으니까. 우리 백부는 아직 살아 계시고요. 백세 넘겨 사실 양반을 어찌 이게불겄다고 그런 약속을 하셔. 그냥 우스워 죽지라. 전 선생, 내 월급 나올 때 완도에 한번 놀러 오쇼. 아직 여그는 청청한게.’ 나는 그렇겠노라고 약속했다. 경진 학생에게서 짧은 메일이 왔다. ‘여기도 괜찮아요, 교수님. 할머니 돕다가 다음 학기에 올라가려고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바람 좀 쐬게 오만원만 보내주세요. 양경숙씨한테서 받으면 갚을게요. 계좌는 수협이고요 ㅠㅠ’”(275쪽)
따뜻한 시선과 풍성한 토속어로 향토적인 생명력을 발산해온 소설가 전성태가 표제작 ‘여기는 괜찮아요’를 비롯해 최근 발표한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 ‘여기는 괜찮아요’(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9년 만의 소설집으로, 그의 다섯 번째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일흔이 넘은 노인(‘상봉’), 오래전 함께했던 형을 기억으로 만나는 대학교수(‘여기는 괜찮아요’), 아버지를 보내고 오는 딸과 의붓어머니(‘숲으로’), 어머니의 장례식에 따라가 애도의 방식을 고민하는 중년의 딸(‘가족 버스’) 등등.
―“고비의 방식”이라는 말이 인상적인 ‘깡통’은 어떻게 태어난 것인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5년 가을에서 2006년 봄까지 6개월간 몽골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9번이나 몽골을 다녀왔다. 몽골에서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쓴 것이 세 번째 소설집 ‘늑대’였다. 그때 몽골에 대해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하나를 더 쓰고 싶어서 쓰게 됐다. 특별한 모델이 있는 건 아니다. 몽골 고비 사막에 가면, 가끔 할아버지나 할머니하고만 지내는 어린 애들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엄마가 돌아가 이모 집에 어린 딸들을 맡겨 놓은 집을 아이의 아빠와 함께 찾아간 적도 있었다.”
소설 ‘조용한 생활’은 고교 시절을 보낸 곳의 대학교수로 돌아온 준모의 이야기다. 어느 날, 준모는 주인집 허 노인으로부터 여순사건 희생자의 학적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는 학적부에 전화했다가 고교 시절 유일한 친구 양태민과 보낸 어두웠던 학창시절을 되짚게 된다.
―여순사건의 심연으로 곧 육박해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대학교 안에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119연구소’가 있는데, 운영위원을 맡아서 하나씩 배우고 있다. 제가 다닌 고교 근처에서 사건과 관련해 유해 발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선교사 기록 등도 남아 있었지만, 유해가 발굴되진 않았다. 주민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아마 유가족들이 당시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시신을 하나둘 찾아가지 않았겠느냐 라고 하더라. 지금 살고 있는 주인집 어르신이 2022년 가을 무렵 작품 속의 내용과 비슷한 것을 요청하신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자료를 찾진 못했다. 주인이 쪽지를 전했을 때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스물다섯에 작가가 처음 됐을 때는 결국 단 한 편의 작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 생활을 30년째 해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작가란 단 한 편을 남기는 과정이 아니고, 중간에 실패 같은 것을 해가며 작품을 쓰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인생을 살아가는 결과로서 한 편씩 소설이 나오는 것이지, 단 한 편을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소설 쓰기가 제 삶의 형식인 것처럼, 오랫동안 질문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듯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를 통해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자꾸 ‘무엇인가에 진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소설가 전성태는 삶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새벽 5시 일어나서 수업 준비를 하고,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 가서 걷고, 학교에 나가서 수업하거나 공부하고. 수업하는 것도 좋고, 지금 이 순간 이 공기 안에 있는 것도 좋다. 틈틈이 걸으며 생각하고 희구할 것이다. 아직 “못다 쓴 이야기, 꼭 쓰고 싶은 소설”을.
예전에는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활동하고 계셨고 글쓰기 친구들도 옆에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홀로 걷는 감각이 도저하다. 선생님이나 선후배 작가들이 하나둘 떠날 때마다 마치 가족이 떠나가는 듯한 통증 역시. 혼자 걷는 감각으로 글을 써 가리라. 몽골의 친구 네르귀가 할아버지를 떠나서 세상으로 걸어 나온 것처럼.
“네르귀는 엔비쉬 할아버지가 있는 고비로 돌아가지 않았다. 깡통을 싸주며 네르귀를 먼 길로 떠나보낼 때, 그는 그만의 길을 떠났으리라는 게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그게 고비의 방식이라고 네르귀는 동료 연구원들에게 말했다.”(36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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