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지침서' IB매체 기자들 광고요구에 기업 '속앓이'

윤수현 기자 2024. 7. 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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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홍보담당자 100명 설문조사 결과 기사 빌미 광고·협찬 요구 심각 수준
IB 매체 관련 문제 집중 제기…"기사에 대한 얘기보다 협찬 얘기 더 많아"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GettyImagesBank

“투자 자본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좋은 기획 의도를 갖고 기사를 쓰는데, 내용을 보면 새로운 건 하나도 없고 기존에 나온 악재를 재구성한다.”

“시리즈 기사로 이야기하자고 미팅을 요청하고, 기사 얘기보다 협찬 얘기를 더 많이 한다.”

기사를 빌미로 기업에 광고를 빈번하게 요구하는 등 언론의 일탈행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기업에게 유료 계정을 판매하는 것을 주요 사업 모델로 하는 일부 IB 매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IB 매체에서 퇴사한 이들이 새 매체를 창간하거나, 다른 언론사로 가면서 관련 문제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시훈·박정훈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16일 한국광고학회 세미나에서 <2024 유사언론행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500대 기업 소속 홍보담당자 중 100명에게 언론의 비윤리적 취재 실태 등을 물어 진행됐다. 연구는 한국광고주협회 의뢰로 진행됐다.

채권과 주식발행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IB(투자은행) 매체들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시훈 교수는 16일 세미나에서 IB 매체 관련 문제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통상 IB 매체들은 모든 기사를 볼 수 있는 계정 1개월 구독료를 수백만 원으로 책정하고 있는데, 기업에 계정 구독을 요구하거나 투자정보 관련 기사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지주사 홍보담당 A씨는 연구진과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메이저 IB 매체만 있었다면, 거기서 퇴직한 사람들이 차린(창간한) 매체, 이들을 영입한 유사 IB 매체가 나타났다”며 “'이제 자본시장 기사를 많이 쓸거다.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업에 계정 구독을 강요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A씨는 “자본시장에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에게 올바른 기업 정보를 준다면 좋은 의도”라면서도 “새로운 팩트로 기업이 놓쳤던 부분을 지적하거나 그런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시훈·박정훈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16일 발표한 유사언론행위 실태조사 결과 중 일부. 홍보 담당 직원 100명 인터뷰 결과를 기반으로 한다. 단위는 %다.

유통회사 홍보담당 B씨는 IB 분야 보도를 기반으로 한 광고 협찬 요구가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B씨는 “기획취재팀이라는, 누가 (기사를) 쓰는지도 모르는 팀을 하나 만들어놓고 계속 작업한다”며 “(협찬을 대가로) 기사가 내려가는 순간 다른 매체들이 붙기 시작한다. (협찬 사실을 기자나 언론사끼리)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암묵적인 광고 요구도 있었다. 통신회사 홍보담당 C씨는 “(언론사 취재요구에) 대응을 안 하겠다고 강경하게 나오니, 광고 얘기는 하지 않지만 '내가 취재 안 해도 엮여 있는 매체들이 있다. 내가 흘리면 다 취재할 거다'라고 역으로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금융회사 홍보담당 D씨는 “시리즈 기사 10개가 준비되어 있으니 그것에 대해 얘기하자는 미팅 요청을 한다. 그걸 바탕으로 거래를 텄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했다”며 “그 이후 기사에 대한 얘기보다는 협찬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걸로 봐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D씨는 “어느 정도는 협찬이 필요한 것 같아 금액을 먼저 제안했는데, 금액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시리즈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며 “부회장을 굳이 연결해 제목에 넣고 사진을 쓰고. 시리즈물로 협박하는게 트렌드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실제 100명의 홍보담당 직원 중 91%는 “기자에게 소속 언론사의 사업 후원을 요구받은 적 있다”고 답했으며, 90%는 “취재 과정에서 광고 수주를 요구받은 적 있다”고 했다. 기자에게 술자리를 요구받거나(85%), 골프 접대를 강요받은 경우(69%)도 빈번했다. 기업 상품·서비스 할인이나 편의를 요구받거나(61%), 취재 경비를 요구받은 경우(51%)도 절반이 넘었다. 이 중 사업 후원 요구, 광고 수주 요구는 2022년과 비교해 각각 14.8%p, 11%p 증가했다.

▲이시훈·박정훈 계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16일 발표한 유사언론행위 실태조사 결과 중 일부. 홍보 담당 직원 100명 인터뷰 결과를 기반으로 한다. 단위는 %다.

홍보담당 직원들의 주요 피해 사례는 △다른 매체에 올라온 보도를 사실확인 없이 베껴쓰고,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협찬 요구 △추측성으로 미리 기사를 작성한 후 수정요청할 경우 협찬 광고 요구 △기사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다른 언론사를 연결해 협찬 요구 등이 있다. 문제적 행위를 했다고 지목받은 언론사는 168개로, 2022년과 비교하면 33개 증가했다. 연구진은 언론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홍보담당 직원들은 언론사의 비윤리적 행위가 만연한 이유에 대해 언론사 난립(97%), 협찬·광고를 목적으로 하는 생계형 언론사 만연(96%), 처벌 미흡(94%), 무분별한 언론사 설립으로 인한 과열 경쟁(93%)이라고 답했다. 다른 기업이 부정기사를 차단하기 위해 광고와 협찬을 집행한 것이 문제라고 답한 홍보담당 직원도 77%였다.

근절 방안으로는 포털사이트 퇴출 및 기사 차단(97%), 매체사 진입장벽 강화(96%), 포털 입점심사 강화(95%), 법적 처벌 강화(94%) 등이 제시됐다. '무대응'과 '매체사의 자발적 노력 기대'는 각각 44%, 48%로 가장 낮았다. 2022년 조사에선 해당 항목에 대한 긍정 평가가 62.9%, 69.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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