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의 말의 힘]안토니에게 보내는 답글
최근에 나눈 작은 대화를 하나 소개한다. 알게 된 지 어언 10년이 넘은 친구이자 오랜 글벗인 미국 보스턴 대학 리치 연구소 소장인 안토니 우셀라(Antoni Urcelor S J) 신부가 지난 6월에 방한하여 일본의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숭실대에서 한 적이 있다. 강연에서 내가 흥미롭게 들은 것은, 일본의 경우에 에도 막부가 불교를 이용해 그리스도교를 박해했고 그리스도교와 유교가 아니라 신도 사상과 불교의 충돌이 핵심이었다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것은, 한·중·일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유교의 성격이, 특히 조선 유교의 특징이 그리스도교의 박해 과정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강연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유교에 대한 학술적인 관심이 높았지만, 그 관심이 조선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생활세계에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를 보여주는 방증이 조선의 그리스도교 박해라고 한다. 요컨대, 윤지충 바로오가 제사를 거부한 사건은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전면적인 충돌로 발전했다. 이는 조선에서 유교가 생활세계의 준거 기준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온 나라가 들썩였던 사건이었다. 내 생각에, 이 사건은 유교가 문명사적으로 생활세계의 어느 층위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교 박해 사건은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 특히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전면적 충돌로 보아야 하는데, 이 충돌은 유교가 하나의 사변적인 도그마가 아니라 일상의 생활세계 준칙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 유학은 조선에서만큼 생활세계를 좌우할 정도로 근본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정은 중국에서도 비슷한데, 예컨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라고 칭할 수 있는 ‘남창 사건’도 도교와 그리스도교의 충돌이었다. 내 생각에, 특히 문명사의 관점에서 조선에서 벌어진 그리스도교와 유학의 충돌은 조선 유교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요컨대, 조선에서 벌어진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충돌을 어쩌면 유교의 도그마가 조선의 생활세계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 친구와 마무리하지 못한 대화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일단은 여기까지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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