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북한의 생존전략 변화와 북·러 조약

기자 2024. 7. 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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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오래전 폐기했던 군사동맹 부분을 복원했으며, 최초로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경제협력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에 대한 세간의 분석은 군사적 위협을 집중 조명할 뿐,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서 지니는 의미나 안보 면에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 등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느낌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

북·러 조약은 북한이 그간 추구해온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생존과 발전 전략’을 포기한 상황에서, 북한에 ‘러시아, 중국 등 비서방권과의 협력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란 새로운 기회 공간을 제공하였다. 사회주의진영이 몰락한 1990년 전후부터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미국의 승인을 통한 국가생존’ 전략을 추구하였다. 북핵 문제 발생과 그에 대한 미국의 강력 대응 앞에서 이 전략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에 있었던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미국을 통한 생존과 발전의 길을 포기하였다.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기 영구보유와 사용을 공식적으로 법제화하고 미국과의 핵 협상 통로를 폐쇄하며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셀프(self) 국경봉쇄가 겹치면서 당시 북한의 미래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에 결정적 기회를 제공하였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재래식 무기 부족으로 고통을 겪던 러시아에 북한이 지닌 방대한 재래식 무기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됐다. 김정은은 반대급부로 러시아에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에너지 자원 등 경제협력을 요구할 수 있었다. 북·러는 작년 9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일련의 합의에 도달하였다. 북한은 러시아에 일관된 정치적 지지와 함께 재래식 무기 제공을 약속했으며, 러시아는 유엔 제재로 인해 대북수출을 금지했던 석유·가스·코크스 등 연료 자원의 수출을 재개하는 등 포괄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하였다. 이 합의를 공식화한 것이 북·러 조약이다. 이처럼 북·러 조약을 계기로 북한은 탈냉전 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생존과 발전에 유리한 전략환경을 마련했다.

북·러 조약이 상당 기간 양국관계의 주춧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조약이 러시아의 세계전략 틀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다극질서 구축을 주장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 방문 직전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는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 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나갈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한편, 북·러 조약의 군사동맹 부분에 대해서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약 제4조는 우리가 우려하듯이 전쟁 발발 시 ‘지체없이’ 군사적 지원을 한다는 약속이다. 이는 북한이 1961년 7월 옛 소련과 맺었던 동맹조약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그에 앞서 제3조는 ‘조성된 위기상황’(즉,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침략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에 처할 경우”)에 대한 입장 조율과 공동대처를 위한 ‘쌍무협상 통로의 지체없는 가동’을 의무화하였다. 이는 과거에 없던 조항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위기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북한이 중국과도 맺은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이것이 일견 북·러의 긴밀한 협력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거꾸로 러시아가 북한의 호전적인 행동을 제동할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일방적인 침공에 의한 전면전보다 국지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거나 비전투 분야에서 적대적 공방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남북이 전쟁을 원해서가 아니라 오해와 불신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러시아가 유일하게 위기상황 발생 시 제도적으로 북한과 입장을 조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분명하다. 한국이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다면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 우리의 진의를 전달할 수 있으며, 러시아를 상황 안정을 위한 중재자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러관계의 회복과 발전은 국가안보를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정부가 국민안전과 국가번영을 위해 이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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