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배신의 내로남불

기자 2024. 7.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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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배신만 쓰라린 게 아니다. 기업 조직이나 정치판에서도 배신은 늘 일어나며, 배신을 당한 상처가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배신의 상처보다는 덜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사랑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는 다른 이성을 만나 치유될 수도 있지만, 기업 조직이나 정치판에서 당한 배신으로 인해 아예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면, 이건 치유되기도 어렵다.

“개는 절대 거짓말 안 하죠. 배신할 줄도 모르죠.”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가 1989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개 키우면서 얻은 철학 같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1994년 문화방송 기자였던 박영선이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와 ‘육영수 여사 서거 20주기’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하루 일과를 물었다. 박근혜는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고 했고, 그 이유에 대해 “동물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배신은 악덕이지만, 무작정 배신을 비난하면서 배신자에게 저주를 퍼부을 수는 없다는 데에 인간 세계의 딜레마가 있다. 공적(公的) 영역과 사적(私的) 영역의 차이 때문이다. 그 누구건 우리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라고 하는 두 종류의 관계를 동시에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적으론 큰 신세를 진 사람에게 공적으론 반대하거나 비판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어찌 해야 하는가?

배신의 위계질서가 내로남불 불러

우리는 늘 공사 구분을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공직자에겐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이 겉으로 하는 말만 들으면 한국은 세계에서 공사 구분을 가장 잘하는 나라일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당위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여전히 부족주의이기 때문이다. 부족주의는 내로남불의 이념이다. 부족주의에선 공사를 구분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용납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기 부족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가능해진다.

부족주의와 더불어 지도자 추종주의가 강한 한국에선 배신을 규정하고 결정하는 건 더 강한 권력이다. 그래서 배신에 대한 질책은 늘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법은 없다. “위에서 그렇게 배려해주고 키워줬는데 배신하다니”라는 말은 가능해도 “밑에서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데 배신하다니”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밑에서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데 몰라주다니”라는 정도의 서운함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배신의 이런 위계질서는 “나는 배신해도 되지만 너는 배신하면 안 된다”는 식의 내로남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배신’은 자주 쓰여온 말이긴 하지만,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처럼 많이 쓰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도리’ ‘은혜’ ‘의리’ ‘배신’ ‘변절’이란 단어들이 난무했다. 특히 이른바 ‘배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윤석열을 겨냥한 배신 타령이 많았다. 당시 쏟아져 나온 민주당 인사들의 ‘배신론’ 또는 ‘배은망덕론’을 몇개 좀 감상해보자.

“물 먹고 변방에서 소일하던 윤 검사를 파격적으로 발탁한 분이 대통령이다. 윤 총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대통령께는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고, 인간적인 도리도 다해야 한다.”(김병기) “오랫동안 한직에 밀려 있던 사람을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는데 은인 등에 칼을 꽂은 배은망덕하고 뻔뻔한 사람이다.”(노웅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는데, 이를 배신하고 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다.”(송영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배신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알겠나.”(윤건영) “대통령의 신임마저 저버린 배은망덕한 행위를 한 윤석열 총장은 역사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추미애)

당시 윤석열은 이런 비난 공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인정하거나 수긍했을까? 더 궁금한 건 최근 국민의힘 7·23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원희룡 등 후보들이 경쟁자인 한동훈을 겨냥해 퍼붓는 ‘배신 공세’에 대한 생각이다. 처음엔 한동훈이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한 ‘제3자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한 걸 문제 삼더니, 7월4일부터는 김건희 사과 논의 문자 ‘읽씹’ 논란을 매개로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윤석열도 친윤 인사들에게 ‘읽씹’을 언급하면서 “이런 XX인데, 어떻게 믿냐”는 취지로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데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11년 전 발언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오직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인가?

윤의 ‘배신 타령’은 어리석은 자해

윤석열의 생각이 궁금하긴 하지만, 사실 하나 마나 한 질문이다. 배신 타령은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 어리석은 자해(自害)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무엇인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 김종인이 12일 저녁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답을 제시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했던 통치 행위, 헌법상 주어진 권한만 발동하면서 3년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절대 자기 뜻대로 가지 못한다”며 “국민이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무슨 말인가? 윤석열이 여태까지 해온 방식대로 계속 밀어붙이면 망한다는 이야기다. 제발 크게 보시라. ‘읽씹’은 쟁점이 될 수 없는 사안이다. 대통령 부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쟁점이며 그래야만 한다. 잠시 2021년 12월26일로 시간 여행을 해보자. 그날 김건희는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 말씀 드린다”라는 대목에선 잠시 훌쩍이며 뒷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의 논란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건 모든 국민이 아는 바와 같다. 이후에도 김건희는 계속해서 남편과 국민의힘에 큰 타격이 되는 ‘사고’를 쳤다. 문제의 명품백을 받으면서 “제가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이라는 국정농단급 발언을 한 날도 ‘김건희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2022년 9월13일이었다. 김건희가 저지른 크고 작은 스캔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이 찰 정도로 많았으며, 이는 윤석열의 지지율을 20~30%대에 묶어두면서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하는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윤석열이 김건희의 그런 자해적 행태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기만 한 건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더욱 불가사의한 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다. 왜 윤석열 부부를 그렇게 방치하면서 추앙만 하는가? 국민의힘이 망한 다음에 그런 추앙이 무슨 소용인가? 국민의힘이 망하면 나라가 잘되는가? 아니다. 다 망한다. 지금 민주당이 사당(私黨)으로 전락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건 국민의힘이 망가지면서부터 시작된 비극이라는 걸 모르는가?

“집권여당은 대통령과 척지는 순간 망한다”는 말보다는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모두 다 망한다”는 말이 더 절실한 게 아닌가? 배신을 말하는 이들은 윤 정권의 성공을 원하는 충정을 알아달라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기는 한가? 직언이 먹혀들지 않으면 직언을 반복하고, 그러다가 대판 싸우기라도 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싸우는 건 배신이 아니다. 진짜 나쁘고 무서운 배신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큰 재미를 본 사람이 “사람에게 충성하라”고 강권하는 건 일종의 ‘먹튀’다. 윤석열은 자신이 그 말을 했을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그간 자신의 모든 언행이 공적 대의에 부합했는지,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한동훈은 왜 과거의 자기처럼 행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이런 XX인데, 어떻게 믿냐”는 말이 나온다면, 자신의 과거는 자기 잇속만 챙긴 사기극이었다는 뜻인지 궁금하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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