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급발진 사고 예방, 사람보다 기술에 달렸다
지난 1일 오후 9시27분경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일방통행 도로를 고속으로 역주행하던 차량이 방호울타리를 넘어 보도 위 사람들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만 9명이다.
이 사고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당 차량은 갑작스럽게 굉음을 내면서 질주하다 사고를 냈다.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 사고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급발진 의심 사고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면 대부분 차량 결함이 아니라 운전자 실수가 원인인 것으로 결론 난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착오로 액셀 페달을 밟기 때문에 차가 갑자기 질주한다는 것이다. 차가 안 멈추니 운전자는 더 세게 액셀을 밟고, 그러다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사고 후에도 운전자는 자신이 줄곧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고 믿는다. 물론 ECU(Electronic Control Unit·자동차 전자제어장치)가 오작동 상태였다면 운전자가 실제로는 조작하지 않았음에도 액셀을 밟은 것으로 기록될 수 있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조차 급발진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급발진 의심 사고의 상당수는 운전자 실수에 의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우선 운전자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누구든 운전할 때 다급한 상황에서 실수로 브레이크 페달 대신 액셀 페달을 밟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혹시 차가 급발진하면 자신이 밟고 있는 페달이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이를 운전자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페달을 잘못 밟았더라도 급발진을 막을 수 있는 기술적 장치도 매우 중요하다. 이미 일본에서 보급되고 있는 급발진 방지장치가 있다. 이는 비정상적으로 세게 액셀 페달을 밟으면 엔진에 공급되는 연료를 차단한다. 아예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지능형 속도조정장치라는 것도 있다. 차량 속도를 도로의 제한속도에 자동으로 맞춰준다. 유럽에선 2022년부터 신차에 이 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런 기술은 사람의 실수로 사고 낼 가능성을 크게 낮춰준다.
사실 페달 오조작에 의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에선 잘 발생하지 않는다. 제동장치를 밟은 후에는 클러치를 밟아 동력 전달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페달 오조작 사고는 자동변속기라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부작용일 수 있다. 따라서 부작용을 막는 장치를 시급히 보급해야 한다.
일각에선 도로 자체를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도용 방호울타리를 차량용 방호울타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비용 측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보다 입체적인 차량유도시설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약 급발진이 시작된 웨스틴조선호텔 출구에 자연스럽게 우회전을 유도하는 보도 높이의 입체시설이 있었다면 사고 차량이 일방통행로로 바로 진입할 가능성이 낮았을 것이다. 유럽 도시에선 건물 진출입로에 이런 입체시설물을 설치해 차량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분명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주의 운전을 유도하고 충돌 시 차량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한다.
안전 분야의 석학인 제임스 리즌은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 사람이 일하는 조건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홍보나 단속을 통해 사람을 안전하게 바꾸는 것보다 차량이나 도로를 더 안전하게 바꾸는 것이 낫다는 걸 의미한다. 제2의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이미 알려진 기술적 보완책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정 운전 집단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통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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