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비율’ 대주주 입맛대로…일반 주주 재산권 누가 보호하나
자산 4000억원 로보틱스 1주당 6조원 밥캣 0.63주 교환…소액주주 반발
총수 지분 많은 곳 유리하게 합병 위해 기업 가치 의도적 억누르기 의혹도
SK이노·SK E&S 합병 주목…‘이사 충실의무’ 상법 개정, 대안으로 거론
최근 기업 간 합병에서 ‘합병비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합병비율이란 합병회사 간 주식의 교환비율을 말한다. 이 비율에 따라 합병 과정에서 어느 회사가 더 많은 가치를 인정받는지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일부 소액주주들은 불공정한 합병비율 때문에 자신의 주식가치가 희석된다고 반발한다.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각각 이사회를 열고 두 회사의 합병안을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합병비율이 주목받는 이유다.
최근 합병비율이 논란이 된 사례는 두산로보틱스의 두산밥캣 흡수합병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중간지주회사 격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시킨다고 발표했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비율은 1 대 0.63으로 정해졌다. 두산밥캣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로보틱스 63주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두 상장법인의 합병 시 합병비율 산정 방식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두 회사 주가의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한 값인 기준시가를 합병가액으로 한다. 이에 따라 주당 기준시가가 두산로보틱스는 8만114원, 두산밥캣은 5만612원으로 계산되면서 합병비율은 1 대 0.63이 됐다.
법에 따른 것이지만 합병비율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두산로보틱스에 흡수되면서 상장폐지되는 두산밥캣은 지난해 매출이 9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3900억원, 순자산은 6조원에 달하는 알짜 회사로 통한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530억원에 그쳤고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순자산은 4000억원대에 불과하다. 일부 두산밥캣 주주들은 두산그룹이 그동안 의도적으로 두산밥캣 주가를 억제해왔으며, 두산로보틱스 기업가치가 고평가되고 두산밥캣은 저평가된 시점에 합병을 결정했다며 반발했다. 주주권 옹호 민간단체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내고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앞서 상장법인 간 합병비율이 논란이 됐던 대표적인 사례는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 대 0.35로 산정됐다.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반발했다.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 간 합병비율도 논란거리다. 2022년 상장법인 동원산업과 비상장법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을 꼽을 수 있다. 상장법인은 기준시가를 합병가액으로 정해야 하지만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낮으면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비상장법인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40% 대 60% 비율로 가중평균해 합병가액을 정한다.
당시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은 1 대 3.84로 정해졌다. 그런데 동원산업은 합병가액을 자산가치보다 낮은 기준시가로 정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90%가 넘는 동원엔터프라이즈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은 강력 반발했다. 결국 동원산업이 기준시가가 아니라 자산가치를 적용해 합병비율은 1 대 2.70으로 변경됐다.
이와 유사하게 상장법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법인 SK E&S가 합병할 경우 그 비율에도 관심이 쏠린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기준 매출이 77조2900억원, 영업이익은 1조9000억원이다. SK E&S는 매출이 11조1700억원, 영업이익은 1조3300억원이다. 두 회사 모두 SK(주)가 지분 36%와 9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상장법인 SK이노베이션이 합병가액을 기준시가와 자산가치 중 무엇으로 정할지가 일차적 관심사다.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 수준으로 주가가 자산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상태이다. SK이노베이션이 기준시가를 합병가액으로 잡으면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또한 SK E&S 상환전환우선주(RCPS·만기 때 투자금을 상환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주식)를 3조원 이상 보유한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치(KKR)도 합병비율을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지속되는 합병비율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합병 전후 달라지는 것은 두 회사 주주의 지분율인데 중요한 것은 합병비율”이라며 “그런데 이때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결정하라는 법만 있으면, 합병비율이 1 대 10이 되건 10 대 1이 되건 이사는 할 일을 다 한 것이 된다. 그러면 주주의 재산권은 누가 보호하느냐”고 지적했다.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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