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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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문을 연 카페에는 손님이 제법 많다.
꽃양귀비 들판에 수레국화가 드문드문 있다면 수레국화는 그 아름다움이 꽃양귀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서로 다른 세대가 수레국화와 꽃양귀비처럼 어울린다면 'N포세대(N 가지의 것들을 포기한 세대)'니 '마처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니 하는 말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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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문을 연 카페에는 손님이 제법 많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청년 하나,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브런치를 하는 젊은 엄마 셋,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 열심히 의논 중인 중년의 남성 둘…. 근처의 S 카페가 노트북을 마주한 1인 청년들로 가득한 것과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이다.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분위기를 음미하듯 주위를 살핀다. 바리스타가 3명이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과 7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다. 세 명이 어울려 일을 한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얼음을 채워 과일을 갈고 계산을 한다. 누가 어떤 일을 고정적으로 맡아 담당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한다. 그들의 어울림이 회동교차로 절개지에서 만난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같다. 서로 이질적이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어울림이라면, 이 카페는 커피를 만드는 분도 커피를 마시는 분도 모두 세대 간의 어울림이 꽃 핀 들판이다.
70대 여성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시니어 바리스타란다. 그가 만들어준 카페라테는 하트 무늬가 선명하다. 부드러운 거품과 진한 커피 향이 어울려 혀에 착 감긴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어요. 맛있게 드셔요”라는 음성마저 오래도록 따듯하다.
회동교차로에는 봄이면 어김없이 필자를 감탄케 하는 무리가 있다. 비탈을 깎아 교차로를 만들고 그 절개지에 심미안을 가진 누군가가 꽃을 심은 것인가? 척박한 이곳에 바람이 꽃씨를 날라다 준 것일까?
절개지에는 봄이면 수레국화와 꽃양귀비가 어울려 핀다. 파란색의 수레국화, 빨간색의 꽃양귀비, 그리고 그들을 받치고 있는 초록의 줄기와 잎. 빛의 삼원색인 파랑 빨강 초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교차로에 내려서 더 오래도록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짧은 봄을 보내는 안타까움만큼이나 크다. 어쩌면 사람 발길이 직접 닿지 않아 더 어울려 무성한지도 모른다.
수레국화만 피어 있다면, 혹은 양귀비만 피어있다면, 개망초 흐드러지고 금계국 하늘거리는 언덕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파랑과 빨강이 서로에게 빛이 되고 초록이 기꺼이 그들의 배경이 되어 세 가지 색깔이 오묘한 이 세상의 온갖 빛으로 내게 다가온다.
수레국화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잘 번식하며 화려한 꽃양귀비에 비해 수수하다. 수레국화가 있어 꽃양귀비가 더욱 붉은데 수레국화의 들판에 꽃양귀비가 점점이 박힌 양상이다. 꽃양귀비 들판에 수레국화가 드문드문 있다면 수레국화는 그 아름다움이 꽃양귀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모두 제 분량만큼 제자리에 있을 때 더 빛나고 어울린다. 동네 카페에서 만난 손님과 바리스타들이 어울려 따듯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 듯이….
이제 꽃들은 지고 줄기와 잎들만 무성하다. 그들은 남아서 씨를 키우고 뿌리를 더욱 벋어 경사면에 굳건히 버티고 있으리라. 내년에는 더 선명한 색상으로, 더 많이 더 어울려 피어나리라.
‘얘기 좀 들어보자/엄마는 몰라도 돼/팽팽한 전운이 집안 곳곳 감돌아요/돌연 꽝! 문 닫는 소리/국경 그예 갈라놓고//팀장님은 야근하고 막내는 칼퇴해요/더듬더듬 길치 족과 천리안 내비 세대/목표는 서로 달라도/나름 첩경 자부하죠//젊음이 상 아니듯 나이 듦도 벌 아니죠/라떼와 N포 사이 놓인 벽 드높아도/이른 봄 쌓인 눈 녹듯/무너질 날 있겠죠’(곽종희의 시조 ‘간격에 대한 고찰’ 전문)
서로 다른 세대가 수레국화와 꽃양귀비처럼 어울린다면 ‘N포세대(N 가지의 것들을 포기한 세대)’니 ‘마처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니 하는 말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경계를 그어 놓고 영역을 구분 짓고 여기는 파란 수레국화, 저기는 붉은 꽃양귀비만 심는다면 과연 아름다운 세상일까? 서로에게 곁을 내주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빛이 되는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 그곳은 비록 거칠고 힘든 절개지라도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봄의 세상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동네 카페에 수레국화와 꽃양귀비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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