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명 [세상읽기]

한겨레 2024. 7. 1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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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8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경기 과천시의 한 오피스텔 건물로 첫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준일 | 시사평론가

최근 넷플릭스 정치드라마 ‘돌풍’이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경유착 의혹이 있는 대통령을 국무총리가 시해하고 부패한 정치세력을 응징하려 하자 운동권 출신 부총리가 이를 막아서려 하는 것이 주 줄거리다. 한국 정치사의 중요 장면이 대체 역사로 등장한다. 586 운동권을 모욕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한 보수정당 정치인은 “더 이상 586세대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운동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된 이유는 현실 정치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에 기반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가끔 나 같은 필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정치드라마가 현실 정치보다 드라마틱하지는 않다는 얘기가 최근 나온다. 주말 사이 필자는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 유세 중 총격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가 차트를 보기 위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 순간 저격범의 총알이 날아들었고 총알은 트럼프의 오른쪽 귀를 스쳤다. 그는 경호원에 둘러싸여 연단을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신발 신고 나갈게”(Let me get my shoes)라고 외쳤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청중들을 향해 “싸우자”(Fight)를 세차례 외치자 지지자들은 “유에스에이”를 연호했다. 그때 연단 아래엔 퓰리처상 수상 경력 사진기자가 있었고 펄럭이는 성조기 아래에서 피를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 사진을 티셔츠에 프린트해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다. 워낙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보니 한쪽에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암살을 사주했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트럼프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펼쳐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한 대의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당한 뒤 피 흘리며 주먹을 치켜든 사진을 인쇄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 밀워키/AFP 연합뉴스

한국 정치도 긴박하진 않지만 초현실성은 미국에 못지않다. 대통령 부인이 일반인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300만원 상당의 명품 백을 받아도 죄가 아니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도 초현실적이지만 그 명품 백을 받자마자 돌려주라고 지시했는데 용산 대통령실 직원이 이를 이행하지 않아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는, 여사님을 수행하는 직원의 해명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명품 백 때문에 나라가 뒤집어졌건만, 여사님의 간단한 지시사항 하나 이행하지 못하는 무능한 직원이 여태까지 용산 대통령실에 어떻게 붙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초현실적인 사건은 트럼프 저격도 김건희 여사 명품 백 해명도 아니다. 이진숙 전 문화방송(MBC) 기자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로 임명된 일이 가장 충격적이다. 이를 드라마에 비교하면 정치드라마 중에서 최악의 막장드라마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숙 후보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민주당 정권이라고 가정하고 예를 들어보자. “수구기득권 세력과 언론재벌에 포섭된 방송은 손을 봐야 한다”며 티브이조선과 채널에이를 가만둬서는 안 된다고 한 인물이 민주당 정권하에서 방통위원장에 임명되어도 괜찮은가. 예를 들면 우파 언론과 우파 단체들이 천안함 침몰을 기획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주장한 사람도 용인할 수 있을까. 연예인과 영화감독을 우파와 좌파로 나누고 우파 영화를 보면 우리 몸의 디엔에이가 우파가 된다고 말한 사람을 공직에 임명해도 괜찮은 걸까. “현 정권이 민주정권으로 바뀌었지만 수구보수 언론과 우파 방통위원장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한 우파와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들보다 더 독해져야 한다”고 주문한 사람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건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진숙 후보자같이 논란이 많은 인물은 어느 진영이 집권을 하든 공직자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치권의 불문율이자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 상식이 윤석열 정부에서 깨졌다.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깨졌다. 앞으로도 계속 깨질 것이다.

이진숙 후보자는 임명되더라도 한달짜리 방통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5인 합의제 방통위를 2명이 의결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보기 때문에 한건이라도 의결한다면 바로 탄핵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두려운 것은 이진숙보다 더한 사람들이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능히 그런 인물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서 임명할 것이란 점이 가장 초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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