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열화 경쟁 부르는 남북의 ‘짝패 관계’
프랑스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인간관계의 밑바탕에 모방과 경쟁이 있다는 통찰을 모든 저술의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모방적 경쟁이 인간관계를 움직이는 근본 동력이다. 지라르는 말년의 대담집에서 그 통찰을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해석하는 데 적용했다. 전쟁은 모방적 인간의 경쟁행위이며, 모든 전쟁의 본질은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벌이는 결투에 있다는 것이 지라르의 분석이다. 지라르는 모방과 경쟁으로 얽힌 두 당사자를 짝패라고 부른다. ‘전쟁론’을 쓴 프로이센 군사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가 짝패 관계의 전형이다.
클라우제비츠에게 나폴레옹은 경탄하면서 증오하고 증오하면서 닮고자 하는 모방적 경쟁의 모델이었다. 클라우제비츠의 재능은 일찍 꽃피었다. 15살에 소위로 임관하고 24살에 베를린 전쟁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프로이센의 아우구스트 왕세자 전속부관이 됐다. 이 시기에 나폴레옹은 군사적 천재로서 욱일승천해 황제의 권좌에 올랐다. 1806년 나폴레옹이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했을 때, 클라우제비츠는 아우구스트 왕세자와 함께 포로가 돼 1년 동안 억류되는 수모를 겪었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프로이센군은 나폴레옹의 종속 부대로 러시아 원정을 뒤따랐다.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군을 탈출해 러시아군으로 들어가 침략군에 맞서 싸웠다. 조국의 군대를 배반함으로써 조국을 해방하는 일을 한 것인데, 전쟁 막바지에는 프로이센 군대와 러시아 군대의 화해를 끌어내는 중재자 노릇을 함으로써 나폴레옹 군에 마지막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끝난 뒤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프로이센 군부에 배신자로 낙인찍혀 한직을 맴돌았다. 이 군사이론가는 응어리진 마음을 안고 12년 동안 ‘전쟁론’ 집필에 몰두했다.
‘전쟁론’ 속 클라우제비츠의 관심은 온통 나폴레옹 전쟁에 쏠려 있다. 나폴레옹은 이 전략서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사실상 주인공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을 단 한 번도 ‘황제’로 칭하지 않고 ‘보나파르트’라고 부른다. 원한과 증오의 감정이 행간에 흐른다. 동시에 이 책의 저자는 나폴레옹의 군사적 재능에 매혹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전쟁론’에는 전쟁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 얼마나 정교하게 수를 읽어야 하는지 힘주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최고사령관은 아군과 적군의 모든 측면을 알아야 하며, 국제관계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해야 하고, 상대국 정부와 국민의 성격과 능력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온갖 문제들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재빨리 올바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천재의 혜안으로만 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을 끌어들인다. “그런 일은 뉴턴과 같은 수학자도 놀라 주춤할 만한 대수학의 문제라고 한 보나파르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런 능력을 지닌 사람을 클라우제비츠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부르는데, 두말할 것 없이 나폴레옹을 가리킨다. 지라르는 클라우제비츠가 매혹과 증오의 양가감정을 동력으로 삼아 글을 쓴 최초의 근대 작가였다고 말한다.
모방적 경쟁의 짝패 관계는 학문과 예술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그런 사례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가 죽을 때까지 나폴레옹이라는 망령과 싸웠듯이, 니체도 바그너라는 적수와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 젊은 니체에게 바그너는 살아 있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스물네살에 스위스 바젤대학 고전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루체른의 트립셴에 살던 바그너를 3년 동안 스물세 번이나 방문했다. 그 시절 니체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는 바그너에 대한 찬사로 넘친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천재의 상을 그대로 체현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바그너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마치 신적인 것을 영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니체는 바그너의 매력에 압도당해 첫 책 ‘비극의 탄생’을 썼다. 그러나 머잖아 경쟁심이 발동했고, 바그너를 극복해 니체 자신이 되려는 충동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분출했다. 이후 니체의 거의 모든 저작은 바그너에 대한 대결 의식으로 물들었다. 니체는 정신이 온전했던 마지막 해에도 바그너 비판서를 썼다. ‘바그너의 경우’ 서문은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가 지라르가 말하는 짝패 관계의 본보기임을 알려준다.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위험하게 바그너적인 것과 하나가 돼 있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나보다 더 강하게 바그너적인 것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 서문에서 니체는 바그너를 ‘인간이 아니라 질병, 모든 것을 병들게 하는 질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직후에 쓴 자서전에서는 바그너 음악을 두고 이렇게 찬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온갖 신비함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첫 음이 울리면 그 매력을 잃어버린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전적으로 바그너 최고의 작품이다.” 이 말년의 자서전에서 니체는 청년 시절에 쓴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 묘사된 바그너는 실은 니체 자신이라고 말한다. 젊은 니체는 바그너 내면에 꿈틀거리는 ‘의지’를 두고 이렇게 쓴 바 있다. “저 밑바닥에는 강렬한 의지가 급류를 이루며 바닥을 파 엎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길, 동굴, 협곡을 통과해 밝은 빛으로 나아가 권력을 갈망하는 의지였다.” 니체는 바그너에게서 살아 있는 권력의지를 보았고, 뒤에 그 권력의지를 자기 철학의 핵심 원리로 세웠다.
20세기 정치사가 낳은 모방적 경쟁의 극단적 사례는 이오시프 스탈린과 아돌프 히틀러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히틀러가 만든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의 구조와 운동부터가 레닌이 세우고 스탈린이 키운 소련식 공산당의 모방이었다. 히틀러에게 일인 독재체제를 안겨준 사건은 1934년 6월30일 일어난 ‘긴 칼의 밤’이었다. 이날 히틀러는 나치당 안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돌격대 사령관 에른스트 룀을 체포해 반역 혐의를 씌워 총살했다. 그레고어 슈트라서를 비롯한 나치당 좌파 지도자들도 룀과 공모했다는 혐의로 엮여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틀 뒤 히틀러는 ‘국가의 안전에 필요하다면 재판 없는 살인도 정당하다’고 규정한 법을 통과시켰다. ‘긴 칼의 밤’ 사건으로 히틀러는 나치당의 절대권력이 됐다.
히틀러의 행동은 모스크바의 스탈린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스탈린은 룀 숙청 소식을 듣고 정치국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정적은 이렇게 다루어야 해.” 히틀러가 반대파를 없애고 다섯 달이 지난 뒤 모스크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소련 공산당 안에서 스탈린에게 맞먹는 인기를 누리던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당했다. 배후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키로프의 죽음을 즉각 권력 강화에 이용했다. 테러 혐의자를 체포해 비밀 재판으로 처형하는 것을 허용하는 ‘키로프 법’을 만들었다. 이후 4년 동안 수많은 당원이 국가 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지노비예프·카메네프·부하린 같은, 한때 스탈린과 경쟁했던 공산당 지도자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똑같이 일인 체제를 구축한 히틀러와 스탈린은 머잖아 생사를 건 대결을 벌였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두 사람이 벌인 전쟁은 소련군 2900만명, 독일군 1800만명을 동원한 전대미문의 절멸전으로 치달았다. 두 사람의 대결은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고 스탈린이 히틀러 시신을 거두어 모스크바로 가져감으로써 끝이 났다. 한반도 현대사도 모방적 경쟁의 예외 지대가 아니었다. 박정희와 김일성이라는 짝패는 결투하듯 맞서면서 서로 모방했고, 적대의 파토스를 각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러면 모방적 경쟁은 다 나쁘기만 한가. 그럴 리가 없다. 서로를 높여주는 선한 경쟁, 좋은 모방도 있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좋은 쪽을 모방하기보다는 나쁜 쪽을 모방했고 나쁜 쪽으로 경쟁했다. 그 자기 배반의 모방 경쟁이 남북 사이에 다시 벌어지고 있다. 누가 더 저열해지느냐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상대를 넘어서는 길이 아니라 상대 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지금 남과 북의 상호모방은 서로 더 비루해지겠다고 다투는 자해적 경쟁, 한반도 전체를 수렁으로 끌고 가는 자멸적 경쟁이다. 이래서는 남이든 북이든 국제적인 노리개, 체스판의 말 노릇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북의 자기 훼손 경쟁이 하루라도 빨리 끝나야 나라의 자존이 선다.
고명섭
책지성팀 선임기자.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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