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방보다 안락한 쉼터에서 머무르며 치료받으세요"
"저희는 경북 안동에 사는데 아이 양성자 치료받으러 (국립암센터까지) 오려면 왕복 10시간이 걸려요. 매일 올 수가 없어서 숙소가 필요하죠. 주변 환자방은 엄청 비싸고, 쉐어하우스여서 병실과 다를 게 없어요. 아이가 아빠와 유대가 깊은데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해서 걱정이에요."
소아암 자녀를 둔 A씨(하율이 엄마) 얘기다. 하율이는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립암센터에서 소아암 양성자 치료를 받았다. 수소 원자핵인 양성자를 가속한 뒤 레이저를 쬐어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다. 정상 조직에 가는 방사선량을 많이 줄여줘 소아암에서 중요한 치료법으로 평가받는다.
이 양성자 치료기가 설치된 곳은 국내에 국립암센터, 삼성서울병원 단 두 곳이다. 이러다 보니 A씨처럼 매일 치료가 필요한데 거리가 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큰 고충을 겪는다. 병원에서 가까운 '환자방(치료 기간에만 빌려 쓰는 방)', '고시원' 등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는다. 이마저도 가격이 비싸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탓에 대안이 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암센터가 아이디어를 냈다. 소아암 환자 쉼터인 '4P(Place for Paediatric cancer Patient who need Proton therapy)하우스'를 구상했고, 16일 착공식을 열었다.
4P하우스는 소아암 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2층짜리 숙소다. 병원 근처에 위치해 의료진 케어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고, 공용 주방과 독립 침실이 있어 집과 같은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 치료를 받는 6주 동안 전액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소아암 환자 가족의 약 55%가 우리 병원 주변에서 출퇴근 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찾아오고 있다"며 "이 때문에 많은 분들이 환자방, 고시원을 이용했는데 환자방은 하루 3만~5만원을 치러야 하고 고시원은 인프라가 부족해 부모들의 걱정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번에 병원과 가까운 곳에 세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는 하우스를 마련하게 됐다"며 "집처럼 편하게 머물면서 아이와 가족에게 정서적 안정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이 병원 양성자치료센터 김주영 전문의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는 2022년 국립암센터 병원발전기금에 쉼터 마련 기금 조성을 요청했고, 후원 캠페인을 벌이며 모금에 나섰다. 그의 노력으로 1년 동안 약 2억원이 모였고 지난 5월 병원은 부동산 매입을 결정했다. 모금액 2억원에 병원발전기금 6억을 더해 총 8억원을 들였다.
김 전문의는 "소아암은 성인 환자에 비해 진료 시간을 더 들여야 해 (그만큼 환자를 덜 봐) 치료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 국내에선 잘 다루지 않았다"면서 "협소한 공간이지만 환자를 위한 공간을 만든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이번에 4P하우스가 국민들께 잘 전파돼 많은 관심을 갖고 도움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추후 4P하우스의 안정적 관리·운영을 위해 소아암 양성자 치료 수가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서 병원장은 "어린이 치료는 마취하는 데도 오래 걸리는 등 노동력 소모가 많지만 그만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 의료진에 충분한 수가를 준다면 (4P하우스 같은 사업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P하우스는 2개월 뒤인 9월 중순 공사가 완료돼 10월 초부터 본격 운영될 예정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지어진다. 모두 세 가족이 거주할 수 있으며 우선 입주 요건은 △병원과의 거리 △치료 이후 관리가 필요한 경우 △가족 수가 많은 경우 등이다. 사업 후원은 국립암센터발전기금 누리집(https://nccgift.org/)을 통해 가능하다.
임종언 기자 (eoni@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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