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미술품 조각투자` 개척한 화가 지망생… "세계적 미술금융시장 만들것"

신하연 2024. 7. 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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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회계사 직함 내려놓고 간송 미술관서 미술계 네트워크 쌓고 사업 준비
"국내 미술금융 몇천억 규모로 성장 시키고 미술계 ERP 시스템도 구축"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

"금융 분야에서 쌓은 경험, 즉 금융 백그라운드가 제 경쟁력입니다. 금융과 미술을 결합해서 폐쇄적인 시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묶어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열매컴퍼니는 국내에서 1호로 미술품 기반 조각투자 증권을 발행한 회사다. 최근 서울 강남 열매컴퍼니 수장고에서 기자와 만난 김재욱(43·사진) 대표는 미술품 조각투자 시장에 뛰어든 이유를 묻자 이처럼 답했다.

김 대표는 미술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학생 땐 화가를 꿈꾸며 미술 화실에 다녔다. 어느 날 선생님의 "너는 미술로 밥 먹고 살기는 쉽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그는 그림은 좋아하지만 예술씬의 천재들 만큼 본인이 잘 그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미술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도 그 기억과 맞물려 있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KPMG 삼정 회계법인에 들어간 그는 대체투자자문역으로 미술품 투자 관련 보고서를 쓰다가 관련 시장의 기회를 엿봤다고 했다.

김 대표는 "처음엔 회계법인에서 아트 펀드를 만들려고 했는데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 길로 간송 미술관으로 가서 미술계 네트워크를 쌓고 사업 준비를 했다"고 설명했다.

서른 다섯살에 5년차 회계사 직함을 내려놓고 미술관으로 간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품의 가치와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우고 고안해냈다. 그동안 미술 시장에서 미술품 가격은 정확한 로직이 아니라 소위 갤러리의 '어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추정치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것이 산업화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해소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했다. 결국 시장이 성장하려면 대규모 자금이 유입돼야 하는데 로직이 없는 상태에서 주먹구구식으로 가치를 산정하다보면 과거 저축은행의 미술품 담보 대출 실패 사례가 또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었다.

그는 데이터 수집에만 4년을 들여 미술품 가격 산정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고 특허를 냈다. 2018년 설립한 열매컴퍼니는 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미술품 가치를 산정한다.

옥션 거래 등 시장 변동 상황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며 현재는 특정 작품을 넣으면 작품의 재료 종류, 소재, 연도, 면적, 작가 스타일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가치를 평가해주는 이 프로그램 덕분에 미술품 투자계약증권 '1호'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그리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투자계약증권 발행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미술품 외에도 원자재 등 기초자산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술품 시장 특성상 고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이 좋지 않은데 조각투자 도입으로 가격 진입 장벽을 낮춰줬다는 측면에서 미술 시장의 대중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원자재 투자도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시장인 만큼 전문가들과 협업해 공동사업자 형식으로 증권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투자계약증권 당 한 미술품만 조각투자하는 것이 아닌 여러 상품을 패키지로 묶어 증권으로 발행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금융당국에서 투자계약증권에서 미술품 조각에 대해 소유권이 붙어있는 것으로 유권해석을 내려주면 충분히 패키지 상품도 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선두주자인 만큼 산업 발전을 위해 당국에 바라는 점도 확실했다.

김 대표는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모든 조각투자사가 1년 이상 영업을 중단했던 상황에서 지금처럼 증권 발행이 띄엄띄엄 해지고 흥행이 어렵게 규제하다보면 발행사들이 문을 닫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투자계약증권 거래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게 금감원에서 풀어주야 한다"며 "STO가 유통을 전제로하는 증권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재 신종증권(투자계약증권·비금전신탁수익증권)시장이 개설 되지 않아 조각투자한 증권의 매매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기초자산이 되는 미술품을 매각해 얻은 매각 차익을 지분에 따라 분배받는 투자만 가능한 셈이다.

더불어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을 통해 민법 제190조로 발생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법상 미술품 같은 동산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넘기려면 해당 동산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미술품 투자계약증권 유통이 불가하지만, 당국의 유권 해석만으로도 해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개인적인 목표로 글로벌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미술 금융 시장을 만드는 것을 꼽았다.

그는 "국내 미술품들도 가치가 뛰어난데 글로벌에서는 저평가 받고 있다"며 "국내 작가들의 뒤를 받쳐줄 수 있는 아트 펀드 등 자금이 유입되면 시장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미술 금융 시장을 몇천억원 규모로 성장시키는 것이 개인적인 꿈"이라고 짚었다.

재고 매입·매각 과정은 물론 계약서 생성, 현재 재고, 세금 관리까지 가능하게 하는 '미술계의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도 포부 중 하나다.

그는 "글로벌 대규모 갤러리나 옥션에서도 내부 재고관리 시스템이 잘 구비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착안했다"며 "현재 구축 중인 단계라 조만간 기업간거래(B2B) 형태로 출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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