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저널리즘이 굴러가는 구조

윤형중 LAB2050 대표 2024. 7. 16. 1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언론 다시보기] 윤형중 LAB2050 대표
윤형중 LAB2050 대표

“진짜 정치를 개혁하려면 최고위원회 모두발언을 폐지해야 합니다.”

최근 한 정당 인사와 ‘어떻게 정책정당을 만들 수 있을지’를 논의하던 중에 그가 이런 발언을 했다. 급진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제안이지만,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최고위원회는 언론에 공개하는 모두발언 20~30분이 지난 뒤에 비공개 회의로 전환된다. 당 운영 전반에 관한 논의는 비공개회의에서 이뤄지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뤄지는 ‘모두발언’이다. 여기에 언론의 관심이 몰리기 때문이다. 최고위원 개인으로선 이 기회에 정책을 언급하지 않을수록, 주로 현안인 정무적 사안들을 잘 다룰수록 주목을 받는 편이다.

마침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 시즌이다. 그런데 막상 최고위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들은 어떤 포부와 계획을 갖고 출마했는지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당헌을 보면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정당 운영 전반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최고위원을 경험한 몇몇 의원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최고위원이 돼서 가지게 된 것은 당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라기 보단, 언론에 등장할 수 있는 발언권이라고 한다.

실제 언론사 정치부의 운영 구조를 보면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된다. 일주일에 두 번(국민의힘) 혹은 세 번(더불어민주당), 오전 9시에 열리는 양당의 최고위원회 회의실에는 기자들로 가득 찬다. 최고위원들이 입장할 때부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여기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놓치지 않고 기자들이 받아 적어 각 언론사에 실시간으로 보내진다. 언론사들은 최고위원회 발언들, 몇몇 정치인들이 아침 라디오방송에 나가 한 발언들을 모아 데스크(언론사 간부들을 지칭) 회의를 하고 그날의 보도 기조와 계획을 짠다. 하루 치 정치 저널리즘이 굴러가는 구조다. 이런 식으로 일하다 보면 정치부에 수년간 근무해도 국회 상임위 회의 한 번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사회 문제가 국회에서 어떻게 포착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법안들이 상임위와 법안심사 소위를 어떻게 거치고, 상임위에서 가결된 법안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본회의에 회부되고 법률로서 완성되는지 등의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추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기자들이 양산된다.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매일 당 안팎에서 벌어지는 파워게임이다. 중요한 현안이나 정책적 사안도 누구에게 유불리하게 흘러가는지에 집중하는 ‘정무적인 관점’으로 보도하는 편이다. 정치인들도 그 문법에 충실하게 따른다. 정치인 입장에선 언론 노출이 정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상임위에서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은 가성비가 낮다고 여긴다. 상임위 전체회의, 대정부질문 등 주요 의정활동에서도 정책보단 정무적 사안을 잘 다뤄야 정치인으로 성장한다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 등에서 정무적 사안으로 전투력을 발휘한 다음에 대변인 등의 당직을 맡고, 최고위원으로 출마하는 게, 중진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주요 경로로 여겨진다. 이렇듯 정책이 비주류화된 정치는 언론과 정치의 합작품인 셈이다.

최근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의미 있는 시도도 있다. 지난 4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책위원회 의장이 되고서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매주 초에 각 상임위가 입법·정책 회의를 하도록 하고, 이를 종합해 수요일마다 정책위 전체회의를 열어 당론으로 할 입법 사항을 정하고 있다. 매주 상임위 차원서 회의하는 게 별 것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동안은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 이전에 당 차원에서 사전에 정책을 논의하고 점검하는 체계 자체가 부재했다. 정책으로 유능한 정당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지만, 문제는 의원들의 참여가 유지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고, 언론에 노출되는 가성비는 너무나 낮다. 결국 유권자들이 보기에 맨날 싸움만 하는 ‘그들만의 정치’가 반복되는 배경엔 이런 이유가 있다.

언제까지 정치가 이런 수준이냐고 욕하기 전에 관심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정책정당이 되느냐, 정쟁정당이 되느냐는 언론의 관심, 아니 우리의 관심에 달려 있다.

Copyright ©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