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망원경과 블랙홀 [강석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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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 잘나가던 배우가 나이 들면 선택지가 둘 있다.
1990년 우주로 올라간 허블망원경은 그동안 놀라운 관측으로 천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은하의 중심에 태양 질량의 수십만에서 수백억배나 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블랙홀은 큰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고 남은 잔해라고 알고 있던(별질량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대중들에게 초대질량 블랙홀의 존재는 공상과학(SF) 영화의 설정이 현실이 된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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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젊을 때 잘나가던 배우가 나이 들면 선택지가 둘 있다. 내리막 조짐이 보일 때 은퇴하고 떠나거나 비중이 줄어든 배역을 감수하며 현장에 남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필자 나이대의 조연 배우를 보며 ‘저 사람도 한때는 대단했는데…’라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가 있다.
얼마 전 한 과학 뉴스를 보고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자이로스코프라는 장비의 고장으로 관측 효율이 25%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자이로스코프는 렌즈가 관측 대상을 정밀하게 조준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 지금까지 세개를 써서 빠르게 계산했지만 하나가 망가지면서 앞으로는 하나만 쓰고 나머지는 보관한다고 한다. 우주인을 보내 허블망원경을 손볼 계획이 없어 최대한 오래 쓰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지난 2022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가며 허블망원경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아졌지만 이제는 절대적으로도 줄어든 셈이다.
1990년 우주로 올라간 허블망원경은 그동안 놀라운 관측으로 천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은하의 중심에 태양 질량의 수십만에서 수백억배나 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블랙홀은 큰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고 남은 잔해라고 알고 있던(별질량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대중들에게 초대질량 블랙홀의 존재는 공상과학(SF) 영화의 설정이 현실이 된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별질량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100배를 넘지 않고 초대질량 블랙홀은 10만배 이상으로 정의된다. 그 사이인 태양 질량의 100에서 10만배인 블랙홀을 중간질량 블랙홀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관측 증거는 없지만 구상성단의 중심부에 존재할 것으로 추측한다. 구상성단은 별 수만에서 수천만개가 공 모양으로 모여 있는 천체다. 우리은하의 구상성단인 오메가 센타우리는 1만5800광년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맨눈에 희미한 별로 보인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오메가 센타우리의 중심에 질량이 적어도 태양의 8200배인 중간질량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독일 막스플랑크전파천문학연구소가 주축인 다국적 공동연구자들은 지난 21년에 걸쳐 허블망원경이 관측한 오메가 센타우리 방향 이미지 500여장에 담긴 별 15만개의 움직임을 분석해 이 가운데 일곱개가 더 빨리 움직이는 현상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오메가 센타우리 중심부에 있다. 연구자들은 일곱 별의 유별난 움직임은 블랙홀 중력이 작용한 결과이고 계산 결과 질량이 적어도 태양의 8200배가 돼야 해 중간질량 블랙홀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편 지난달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구상성단 중심부에 중간질량 블랙홀이 생기는 과정을 시뮬레이션 연구로 보여준 일본 공동연구자들의 논문이 실렸다. 결국 은하의 중심에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이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구상성단의 중심에는 중간질량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2035년까지 허블의 자이로스코프가 하나라도 작동할 확률이 70%가 넘는다고 예상했다. 비록 조연이더라도 허블망원경이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 활약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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