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힐빌리의 노래
레드넥(redneck), 힐빌리(hillbilly).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충격받은 미국 주류 언론들이 새삼 주목한 백인 노동계급을 이르는 표현이다. 각각 목덜미가 그을린 남부의 백인 노동자, 중부 애팔래치아산맥 주변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백인들을 뜻한다. ‘시골뜨기’의 경멸적 어감이 담겨 있다. 동서부 해안 도시 중산층의 시선이기도 하다. 민주당 지지 성향 언론과 싱크탱크가 이 집단에 새삼 시선을 돌린 건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중 힐빌리는 2016년 6월 출간된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으로 유명해졌다. J D(제임스 데이비드) 밴스의 자전적 에세이인데, 켄터키와 오하이오 시골을 배경으로 가난, 부모의 마약중독, 가정폭력·학대 등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성장기를 다뤘다. 고단한 삶에 절망하고 지쳐 있었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이었다. 그때까지 주류 사회가 직시하지 않으려 한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책의 저자 밴스가 15일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개막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부통령)로 낙점됐다. 트럼프가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 후계자로 이 39세 초선 상원의원을 파격 발탁한 것이다. 밴스는 할머니 양육 덕에 힐빌리의 삶과 작별하고 군 복무와 로스쿨을 거쳐 정계에 입문했고, 2022년 공화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그의 베스트셀러 책과, 같은 제목의 영화 덕을 톡톡히 봤다는 점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소환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가 총격을 받은 펜실베이니아, 전당대회가 열리는 위스콘신, 밴스의 고향인 오하이오 등 쇠락한 공업지대가 민주·공화 간 치열한 경합주여서 본선 승리에 이롭다는 점도 작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밴스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에 있었다. 그는 당시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선동을 “히틀러” “문화적인 마약”이라고 부르며 거리를 뒀다. 하지만 4년 뒤 대선에서 태도를 바꿔 열렬한 트럼프주의자가 됐고, 트럼프의 대선 개표 조작 음모론에 동조했다. 결국 이번에 트럼프의 선택을 받았다. 트럼프가 변한 것일까, 밴스가 변한 것일까.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트럼프 시대엔 어떤 것도 영원불변하지 않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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