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남발’로 커진 개헌 목소리…정치 양극화로 기대감은 ‘위축’
76주년 제헌절을 맞아 국회 안팎에서 개헌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빈번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최악의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개헌 현실화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위축된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최근 제헌 관련 학술행사가 이어졌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표를 맡고 있는 정책연구원 ‘정책공간 포용과 혁신’은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화 이후의 공화주의와 개헌’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회사무처와 한국헌법학회, 한국정치학회는 전날 ‘개헌,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자리에서 “22대 국회 전반기 2년이 개헌의 적기”라며 “의견을 수렴해 개헌 자문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에 대한 논의는 과거부터 이어져왔으나, 최근에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문제와 맞물려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제한하고, 당적을 없애는 방향으로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기도 했다.
거부권과 별개로 대통령 권한을 약화하는 내용의 개헌안들도 소개되고 있다. 우 의장이 강조해온 4년 중임제 개헌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5년 단임제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되니, 중간평가를 받아야 하는 4년 중임제로 바꾸면 민심을 더 잘 살필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 학계에선 대통령이 마치 3권 위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국가원수 조항(제66조 제1항)의 수정도 거론하고 있다.
다만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는 개헌의 성사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위축시켰다. 여당의 이탈표 8석을 확보하지 못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관한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도 부결되는 상황에서 과연 개헌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팽배해진 것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야가 이렇게 대치하는데 개헌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는가”라며 “의회 정치 복원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선 개헌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 사이에선 대통령 권력의 축소·분산 필요성과 동시에 ‘개헌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혼재돼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중임제에 대한 선호가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이선우 전북대 교수도 전날 열린 국회 학술대회에서 “막연히 권력 구조를 개헌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 정도 있을 뿐 그 방향이나 구체적 내용 등에 있어선 정치권이든 전문가든 일반 유권자든 의견이 분분한 상태”라며 “현 시점 한국은 개헌의 필요성에 관해 일각의 당위적 인식만 있을 뿐, 그 방향이나 내용에 대한 합의는 협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개헌의 의제를 단순화한 뒤 국민적 공감대를 확대하는 작업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권력구조를 4년 중임제로 할 것인지, 분권형 대통령제로 할 것인지 등은 어차피 개헌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받쳐줘야 고민할 수 있는 문제”라며 “‘대통령 권력의 축소’를 개헌의 최종 목표로 단순·명료화해 이를 의제로 삼는다면 여론 차원의 우호적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헌이 성사되려면 대통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는 “국회가 헌법개정을 주도하게 될 경우, 윤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고 임기 단축마저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될 수 있다”라며 “(윤 대통령이) 헌정사상 초유의 정치적 위기 상황 앞에서 실기하지 않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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