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대, 한국사상에 길을 묻다···창비 ‘한국사상선’ 출간

정원식 기자 2024. 7. 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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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창비 서교동 사옥에서 열린 창비 한국사상선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백낙청 서울대명예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창비 제공

14세기 이후 한국사상의 거장 59명의 주요 저작을 총 30권으로 집약하는 ‘창비 한국사상선’이 출간된다. 조선 왕조 설계자 정도전으로 시작해 김대중 전대통령으로 마무리되는 이 전집은 조선건국부터 20세기 후반까지를 포괄한다.

2021년 2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간행위원 9명이 참여하는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가 꾸려진 뒤 3년 이상 출간을 준비해왔다. 이중 1차분 10권이 출간됐다.

백낙청 교수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상의 종말이 닥친다 해도 놀랄 수 없는 시대의 위태로움이 전에 없던 문명적 대전환을 요구한다는 각성에서 창비 한국사상선의 기획은 시작되었다”면서 “세계적 수준과 비교해 떨어지더라도 한국 사람이니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사상은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자적) 특색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의 시대를 헤쳐나갈 정신적 나침반을 왜 한국사상에서 찾아야 하는가. 간행위는 오늘의 위기에 대한 서구사상의 대응은 ‘지금 이곳의 경험’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반면, 한국사상에는 전 지구적 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 반향을 얻고 있는 데다 한국문학도 느리지만 세계 문학계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저간의 사정도 간행위의 이 같은 자신감에 기여했다.

기존 사상사 연구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인물들이 포함된 점이 특징이다. 이황이나 이이 같은 학자들만이 아니라 군주(세종·정조), 종교인(최제우·최시형·강일순), 여성(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나혜석), 문인(임화·염상섭·김수영·신동엽), 정치인(김대중) 등도 주요 사상가로 선정됐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 해결을 위해 분투했던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점을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민정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는 “원문을 알기 쉬운 문장으로 정리해 현대 한국 독자들이 쉽게 읽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원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시기적인 특성상 주요 사상가들의 저작들은 한문으로 쓰여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20세기 초반 인물이라 하더라도 현대 독자들은 해독하기 어려운 국한문 혼용체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정도전> 편저자인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오래전 민족문화추진회(한국고전번역원 전신)에서 <삼봉집>을 번역했으나 한문투 번역이어서 현대 독자가 읽기 어렵다”면서 “문장의 뜻을 왜곡하지 않도록 직역하면서도 한문 문장의 품격을 살려 번역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도전은 민(民)을 중시했고 국왕이라는 자리의 공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1390년대 세계 어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나”라면서 “권력에 막중한 책임을 요구한 그의 사상은 21세기 한국에도 경종을 울린다”고 말했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2025년과 창비가 60주년을 맞는 2026년까지 각각 10권씩을 더 출간해 30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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