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이후의 민주당, 인권과 민주주의 아직도 살아 숨쉬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치 여정을 살펴보고 이를 분석‧평가해보는 연구서가 출간됐다.
김대중 학술원은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대중 연구서 <김대중 시대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출간했다. 이는 지난 5월 출간된 <김대중의 성평등 :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바꾸다>에 이은 두 번째 '김대중 평화회의 연구' 시리즈다.
김대중 연구 서적 출간을 기획한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은 '자연의 생명붙이에도 생명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자연과 평화‧상생하는 '코스모 민주주의'를 주창했다"며 이번 연구 서적이 "김대중 대통령과 김대중 시대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는 본격적인 학문적‧체계적 시도"라고 소개했다.
이번 연구 서적은 신진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책임 편집자로 하고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융합자율학부 교수,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네스 모슬러(Hannes B. Mosler)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교 교수 등이 공동 집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신진욱 교수는 머리말에서 "김대중 정부 시기는 정치와 사회의 양 측면에서 민주화의 에너지가 생동하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그 후 한국사회의 긴 미래를 규정할 여러 제도개혁이 이때 이뤄질 수 있었다"며 "대통령 김대중은 독재정권에 의해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맞으면서도 수십 년간 민주주의, 인권, 경제정의, 평화, 평등과 같은 가치를 추구해온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집권 후에 정치와 제도, 사회를 개혁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여러 제약 조건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내재적 문제들과 개혁의지의 한계를 노정하기도 했다"며 "무엇보다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적 환난으로 불린 1997년 외환위기의 한 가운데서 일어났기 때문에, 국가부채와 기업들의 연쇄도산, 자영업자들의 파산, 대량실업, 비정규직 확대, 불평등의 심화, 빈곤, 고립, 자살과 같은 수많은 사회경제적 위기들이 민주주의 정치의 역량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처럼 위중했던 시대상황은 복지확대나 재벌개혁 등 진보적 의제의 추진을 용이하게 해주기도 했지만, 고용불안과 노동시장 양극화와 같이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구조와 제도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야당의 신예 김대중(1945-1971), 1971년 대통령선거와 김대중(1971-1973), 인고의 시절 : 납치사건에서 내란음모까지(1973-1982), '국외에서 국내로, 장외에서 장내로'(1982-1987), 야당총재 김대중(1987-1997) 등으로 해당 장을 구성했다.
이어 김동춘 교수는 제2장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발전과 한계'를 주제로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한계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호남 및 도시 중산층 외에 다른 사회 집단의 동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는 점을 짚었다.
김 교수는 이같은 원인으로 한국 정치가 대통령의 리더십에 크게 의존하면서 정당 정치가 제도화 돼있지 않다는 점, 지역사회나 시민사회 조직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 노동조합 조직이 많지 않다는 점 등 풀뿌리 정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자유주의' 지향이 분단된 한국 내에서는 진보적인 측면을 보이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이후 진행되는 양극화 및 빈곤 문제, 비정규직 문제, 환경 문제 등에 대처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제3장은 강우진 교수가 '민주화 이후 정당정치의 발전과 과제'를 주제로 김대중 정부 시기까지 민주당 계열 정당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소개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은 정권 재창출까지 이뤄내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강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민주화 이후 본격화된 지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으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는 수혜자"였다면서 민주당 계열 정당들이 지역정당 체제를 재편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책임 집필자인 신진욱 교수는 제4장 '김대중 정부 시기의 시민사회 제도화와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민주화 이후 2000년대 전반기까지 사회운동을 포함한 시민사회 활동들과 협력적 거버넌스의 제도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그것의 긍정적인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거기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고찰했다"고 전했다.
신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기 사회운동의 조직적 체계화와 연대 네트워크의 형성, 시민사회의 정치개혁 운동, 정책과정 참여와 복지‧환경‧여성 등 의제 부문에서 제도개혁의 성과,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협력적 거버넌스 기구의 설립,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공공지원의 제도화 등, 여러 측면에서 구조와 행위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고, 이때 형성된 시민사회의 이념과 구조는 큰 틀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지만 김대중 정부 당시의 시민사회 제도화와 거버넌스 혁신에는 내외적 원인으로 인한 많은 한계가 있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인 제도화에 수반되는 역설적 문제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같은 부정적 측면들은 김대중 정부 이후에 점점 더 분명히 모습을 드러냈다"며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정치체제에서 시민사회의 정책적 영향력은 정치환경에 따라 흔들렸고, 사회적 대화의 제도들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시민사회 단체들에 대한 공공의 지원은 종종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활기를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정권교체에 따라 제도환경이 극심하게 변하는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꼬집었다.
한상희 교수는 제5장 '김대중 정부와 인권의 제도화'에서 인권의제를 정치 중심에 자리잡게 한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소개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를 비롯한 인권의 제도화, 사회권의 법제화, 여성인권 및 성평등 법제의 확보 등이 인권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제6장에서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교의 정치학자이자 동아시아 연구의 전문가인 하네스 모슬러(Hannes B. Mosler) 교수는 '바깥에서 본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를 주제로 한국 정치 변화와 현재의 상황을 국제비교 관점에서 작성했다.
모슬러 교수는 한국이 오랜 독재 지배 끝에 민주화를 이루며 "민주주의 성공 이야기"를 보여줬지만, 현재 시민사회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정부가 보수단체에 대한 이념화된 지원에 치우쳐 있고 정치제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다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성숙한 민주시민사회를 위한 교육과 혁신,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분산과 비례적 참여를 확대하는 정 치제도 개혁을 제안했다.
신 교수는 "1987년에 독재와 국가폭력의 시대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열린 후에도 한국사회는 언제나 각 시대의 도전과 씨름하며 극복해왔지만, 지금처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열정이 사라지고 사회 전체가 냉소와 무기력에 빠진 듯이 느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현재 한국의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하지만 민주주의의쇠퇴, 자유의 상실, 희망 없는 정치, 불평등과 불안, 전쟁의 위험과 같은 잔인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자 한다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과 원천을 성찰하고 변화를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이다"라며 "이 책이 그런 집단적 노력의 일환으로서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감동과 좌절, 역설과 반전이 엉클어진 과거를 넘어 역사의 새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지금 이곳에서 미래를 만들고 있는 우리들의 행동하는 양심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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